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 - 이순구의 역사 에세이 너머의 역사책 5
이순구 지음 / 너머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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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오랜 유교 사상에서 지배  받아오지 않았나 싶다
남녀 차별이라든지, 남아선호 사상..지급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이책의 제목으로만 볼경우 조선시대의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1
장가들기, 남자가 움직이는 혼인
왜 여자들은 결혼전에는 당당하다가 결혼하고 나면 많이 참고 살아야하는

결혼해서 살아본 여자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데

왠지 이책 처음에서 시작하는 내용은 왠지 통쾌하다

 원래 여자가 세상의 중심에서 움직이는 핵이엿을거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집을 가다가 아닌 장가를 들다는 결혼을 해서 친정집에서 첫아이가 생길정도 까지

여자가 살다가 시댁에는 시어른은 단지 남편이 한번씩 오가며 서신이나

주위 사람들이 말로 며느리의 모습을  알게된다니 참 생각지 못한 현상이다

 

따져보면 조선실록이나 역사드라마등을 보아도 외척의 힘이 얼마나 크게 왕가에서도 작용을 햇는지 알수가 있다

16세기까지 조선은 남자가여자집으로 장가가는 남귀여가혼이엿다

결혼은 같은 당색안에서 이루어졋고 부부는 문화적 배경이 유사하고

따라서, 근대 이후처럼 개인적인 감정대립으로 갈등하는 경우가 적었다

조선후기 여성 성리학자 강정일당은 남편과 쪽지편지를 주고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른바 척독(尺牘)이라고 하는데 내용은 학문적인것이여서 그렇게 로맨틱하지는 않다.

하지만 남편과 아내에게 각자의 거주공간이 있엇다는것을 보여준다.

공간분리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관계가 소원해지는게 아닐까 생각할수도 있지만

서로 존중하면서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데 오히려 유용햇다.

조선에서는 아버지가 양반이고 어머니가 적처에 양반이어야지만 자식이 온전한 양반이 될수있엇다.

어머니가 저거가 아니거나 도 양반이 아니면 자식은 절름발이 양반이 될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조선에서 양반 어머니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양반이라는 신분과 또 적처라는 위치엿다.

 조선의 고유 관습으로 경국대전에는 구체적으로 집안의 대를 이을 승중자(承重者 )에게는 1과 5분의 1,

즉 20%를 더 주고 그 외 아들이던 딸이든 무조건 1을 주게햇다.

첩의 자식이냐 적처의 자식이냐의 구별은 있어도 아들 딸의 차이가 없는게

조선의 상속법이엿다.조산중기까지 윤회봉사(輪廻奉祀=제사를 돌려가며 지내는것),

분할봉사(分割奉祀=제사를 분담하는것이다)니 해서 딸들이 제사에 참여하는것은

 어느 집안이나 어렵지않게 볼수있었다. 가령 아버지 제사를 올해는 큰아들이 지내고 내년에는 작은 아들이 지내는것은 윤회,

아버지 제사는 아들이 어머니 제사는 딸이 맡으면 그것은 분할이다.

조선의 여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것은 자신의 집안,즉 친정을통해서엿다

가부장적일것만 같은 조선시대에도 이렇듯 여성의 지위와 위치를 확인할수 있는 사실이 새롭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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