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희정 옮김 / 지혜정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엘레나 페란테는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로서 그 존재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한다. <홀로서기>를 통해 이탈리아 소설을 처음 접했는데,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탁월한 심리묘사가 보이는 작품이다.

어느날 오후, 점심을 먹고 나서 올가는 남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듣는다. 처음엔 남편의 단순한 일탈 내지는 투정으로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다. 남편이 정말로 자신을 떠난 것을.. 그리고 자신은 홀로남겨졌다는 것을..

<홀로서기>는 어느 날 갑자기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혼자남겨짐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다시 살게되기까지의 과정을 격렬하고 적나라한 심리 변화를 통해 보여준다. 처음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남편이 다시 돌아올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더 아름답고, 상냥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버림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녀의 모든 것은 무너진다. 스물둘에 결혼해 자신보다 남편의 성공을 위해 살아왔으며, 두 아이를 낳은 이후로는 그녀의 삶은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을 찾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점점 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부서진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올가는 맞닥드린 현실을 부정하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도 거부하며, 평소 사용하지 않던 거친 언어와 행동을 하는 등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자신의 지각력에도 의심이 생긴다.

 

'나는 책상에 앉았다. 어떤 확고한 생각으로 이곳에 왔는데 그게 무언지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중략)...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그저 활자 위로 눈만 지나칠 뿐이었다. 내 안의 감성이 마비된 듯했다...(중략)...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변해버렸다. 아니, 언제부터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중략)...내 기억은 흐릿하게 변했고 그러다 완전히 황폐해졌다. 이제 망가진 시계는 멈추지 않고 무의미하게 째깍거리며 다른 모든 사물의 시간까지 파괴하고 있었다.'(153쪽)

 

그러던 어느날 올가는 늑대개 오토의 죽음과 아들 잔니의 아픔, 그리고 딸 일라리아의 모습을 통해 점점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정신없고 통제 불가능한 것 같은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진 날 올가는 거울을 보다 남편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자신의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이 다름을 인식하게 되고 비로소 현실을 깨닫게 된다.

 

'거울은 내 상황의 일부를 복제하고 있었다...(중략)...나는 정면의 올가가 나라고 믿고 살아왔지만, 다른 이들은 두 개의 형상을 불안정하고 불확시라게 연결하면서,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전체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었다. 마리오, 특히 마리오에게 나는 내가 생각하는 올가의 모습, 중앙 거울에 비친 올가의 형상을 부여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실제로는 어떤 얼굴, 어떤 육체를 그에게 부여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중략)...마리오에게 내가 한 번도 올가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불현듯 올가라는 삶의 의미는 사춘기적 감수성의 현혹이자 영속성에 대한 내 착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제대로 해내려면 그 두 개의 형상에 나를 맡겨야 했다. 그 둘을 분리하기보다는 하나로 모우고 차츰 거기서 신뢰하면서 나를 성숙시켜 나가야 했다.'(177쪽)

 

작가는 열쇠, 퇴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개미들, 의 모습을 통해 올가가 처한 현실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며, 늑대개 오토의 죽음을 통해 올가가 현실을 인식하고 과거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남편에게 버림받고 자살한 한 여인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시키며, 그렇게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남편에게 버림받은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기 시작하다 결국 남편을 원망하는 단계를 거칠 때 올가는 과거의 어릴 적 환영 속 그녀가 되었다. 하지만 오토의 죽음을 통해 버림받았다는 현실을 깨닫고 온전한 '올가'로서 홀로서기를 한다.

 

'죽음이 임박한 오토의 고통을 지켜보며 지난 몇 달간 내가 겪었던 아픔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것은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아픔이었다. 나는 방이 정돈된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조각조각 갈라져 있던 집의 공간들이 다시 이어지고 물렁물렁했던 바닥이 단단해지며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집 안 구석구석을 투명하게 비추고 있는 것을 느꼈다.'(210쪽)

 

상처입은 여성의 마음을 이토록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펼쳐보인 소설은 없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고통이 마치 내 고통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신랄한 묘사 이면에는 상처입은 마음의 회복과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아주려는 따뜻함도 느껴졌다. 왜 이탈리아에서 한 남자에게 갑자기 버림받은 한 여인의 마음을 다룬 소설이 48주간이나 서점가를 석권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혹자는 이탈리아인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성이 유사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올가의 마음 속 목소리에 한국의 현재에 살고 있는 나 역시 보다 잘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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