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에세이를 쓰겠습니다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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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가는 꼭 에세이 작가가 되고싶은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글을 써야 한다고말한다.

브런치 작가로 처음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퇴사하고 막연히 전자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싶기 마련이니까. 하지 못한 말이 터져나오던 퇴사를 고민했던 시기부터의 글을 모으고 있다. 그렇지만어떤 자신감에서인지 그림도 글도 먼저 공부할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에세이로 독립출판사까지 세운 작가이자 대표 가랑비메이커의 유일한 작법서는 그래서 감회가 새로웠다. 텀블벅으로나 책을 받아볼 수있었던 시절부터 내게 독립서적의 아이콘으로 오랜 팬이기도 하고, 그녀가 다름아닌 에세이 작가이기 때문에 가장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감성적인 동요에 책을 펼쳤는데 내 예상보다 훨씬 친절하고 단호하게, 글쓰기는 작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모습에 바로 학생의 자세가 되어 읽게 되는 것이었다. 공부(?)하다보니 미술 스터디를 하면서 들은 여러 말들이 어느정도 일맥상통한 것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작품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작가의 ‘시선’이라는 것.
에세이와 일기의 차이점, 어떻게 소재를 정하는지, 작업 루틴을 만드는 방법까지 작가를 둘러싼 많은 요소를 세심하게 살핀 다정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글감을 선정할 때 고려야 하는 것은
'얼마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가?'가 아닌
'마지막까지 이끌고 갈 수 있는가?'입니다.
힘을 들이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하듯 쓸 수 있 는 사람은 결코 길을 잃거나 도중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한 번 읽으면 족한 책이 있는가하면 실용서여도 끝내 팔지 않을 책이 있다. 작가의 글에서 느끼는 모호한 매력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 영화나 도서 리뷰를 찾아서 읽다 보면 종종 작품보다도 글을 쓴 사람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글들이 바로 단순한 감상문이 아닌 한 편의 에세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가가 따로 있는 드라마가 아닌 ‘1인칭 다큐멘터리’, 고급 재료가 아니어도 ‘특별한 음식을 요리할 수 있다’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로 글 쓰고싶게 만들어 주는, 글을 쓸 용기와 재료를 쥐여주니 좋은 음식을 알맞게 먹은 것처럼 기분 좋게 든든해진다. 내가 작가로 사는 동안 곁에 두고 내내 읽고 싶다.

#시선들2기 #문장과장면들 #가랑비메이커 #오늘은에세이를쓰겠습니다 #오예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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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날들에 안겨
염서정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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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들2기

자기 전에 책 읽다 자야지- 하고 단숨에 다 읽어버린 책이다.
그런데 조금 나누어 읽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글이다.
에세이만 읽던 시기를 지나 힐링에세이는 이제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타인의 우울이나 부정적인 감정은 더욱이 피하려고 하는 편인데 그늘이 있는 저자의 일기는 신기하게 계속 궁금했다.

< “멀수록 쉽게 돌아올 수 없을 테니까.”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을, 아주 멀리에서, 다른 시간에서, 그리워하고 사랑하려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 -p.23
<그것은 순전한 그리움이기도 했고 희망 사항이기도 했다.> -p.83
한 때 여행에세이를 꼭 쓰고싶었다. 처음 외국에서 살아보고, 혼자서 몇개국을 여행한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그 다양한 상황에서의 반응을 내가 보면서 그러면서 내가 나를 알아갔던 순간들이 나에게는 아름다운 이국적인 풍경만큼이나 소중했다. 그 때는 이 반짝임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감각만 있었다면,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반짝임들이 나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그 기억들이 나를 이루고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것을 안다.
타인의 외국살이는 그래서 부럽고, 읽어보면 즐거운 양가감정이 든다.
그래도 어쨌거나 2019년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
<Phoebe의 작고 말랑한 손
꼭 녹지 않는 솜사탕을 쥐고 걷는 기분이었다.>
<씻기고 난 뒤에 Chloe를 안아 올리자 금세 칭얼거림을 멈추고 내게 온전하게 몸을 의지해온다.>
<미래에 도달해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중략- 나는 이 바닥을 종종 그리워할 것이다. Phoebe와 Chloe를 떠올리며 한 번쯤 어떤 이유에서건 울게 될 거란 것도.> -p.43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린이들을 만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을 잘 떠올리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부터 어린이를 가르치는 일을 우연히 하게 되었고, 아이들로부터 어린 나를 만나는 귀중한 경험을 해왔다.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연약하면서도, 생각보다 못 알아듣는 말이 없고 본인에게 얼마나 마음을 주고 있는지 잘 알고있다. 무의식적으로 어린이를 무시하고 있다면 그건 어떤 면에선 내면의 어린아이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저자가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이야기에선 나도 모르게 쓰여진 글보다도 더 많은 것들이 ’본능적으로‘ 느껴져 눈물이 날 뻔했다.

사랑
<“Love suffereth long•••" 기꺼이 감수하는 오랜 고통.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면 사랑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사랑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손가락으로 그려보는 하트모양보다 훨씬 복잡한 사랑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힘, 그 원천은 이 사람과 함께할 것임은 무겁고 단단하게 정해두고 그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그 전제를 잊지않고 해결해 나간다.

<찌질한 것은 얼마나 위안을 주는가.> -p.99
나는 꽤 어린 나이에 찌질한 것이 당연하고 괜찮다고 (어느 정도는)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 정도로 계속 떠오르는 걸 보면 지드래곤이 남자로서 좋은 게 아닐까, 씨엘의 스모키 메이크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않는 것(!) 같은.. 근데 그 고민들도 다 사랑인 것 같다. 나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고.
십대 시절에 내 아이돌의 성장을 파고들면서 배운 것은, 모두는 아마추어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모두 계산된 것처럼 간지가 나지?싶은 프로의 모습 뒤에는 아마추어의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수도 없이 반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움은 저기 멀리 보이는 가로수 뒤에 숨어있다가 내가 지나가는 시점을 정확하게 알아채고서 갑자기 나타나 나를 흔든다.> -p.112
이번 적재의 신곡 앨범의 컨셉이 그리움이었다. 그리움, 찬 공기, 어두운 색을 보면 나는 부정적인 느낌이 먼저 들어서 사실은 조금 두려웠다. 좋은 기억도 너무나 그리우면 그리움에 점령당하는 느낌이 드니까.
그리움은 상념, 보이지 않는 개념이라기보단 저자의 말처럼 부피와 질량이 있는 존재같다. 엇비슷한 향을 맡으면, 같은 장소를 가면, 특정 단어만 들어도 그래 나 여기 있었어 하고 찾아오는 느낌.

<어둠뿐인 화면 그 속에 그가 들이쉬고 내뱉는 숨결이 담긴다.> -p. 195
책이 몇 장 안남은 이 시점까지 잘 견뎠는데(?) 이 문장을 읽고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의 기쁨, 나의 환희가 곤히 자고있는 순간이 아름답고 애틋한 그 감정을 너무 알 것만 같아서.


그럼에도, 삶
< 바깥은 영하, 아니면 죽어가는 새벽별의 유언이었다.> - p.145
저자가 비행기 안에서 쓴 이 표현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인덱스해두었는데, 옮겨적다보니 지극히 물리적인 말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 그러나 잠에 드는 일도, 걷는 일도 멈출 수가 없다.> -p.151
< 새삼스레, ‘견딜 만하다.’ 는 말에서 어떤 투지와 긍지, 단호하지만 우아함 같은 것을 느낀다.> -p.153
< 사진도 글도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p.174
내게도 삶은 멈출 수 없는 것에 가까운 느낌이다. 날씨가 좋으면 아무리 곤해도 짧은 산책이라도 해야 만족스럽고, 여전히 나를 만족시키려면 어떻게 해주어야 좋을지 헷갈려 어렵다.

#문장과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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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사랑 - 썸머 짧은 소설집
썸머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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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부산 곳곳을 누비며 꼬옥 쥐고 다녔던 싱그러운 책,
#길을걷다가넘어지면사랑 을 소개합니다. 💚

실은 홍보 안해도 이미 다수의 도서전에서 인기 폭발한 화제의 신작이라 이미 인증된 맛집(?) 가듯 가벼운 걸음으로 신나게 읽어보았다. ‘은수‘가 ’차가운 물을 마실 수 있어서 여름이 좋다‘고 한 것처럼, 물 마시듯 쉽고 가볍게 꼴깍꼴깍 마실 수 있는 글로만, 그렇지만 또 밍밍한 물은 아니라서 머리 띵 하지 않으려면 조금 쉬어가며 읽으면 좋은 기분좋은 시원함이 느껴진달까.

실은 여름을 너무 사랑했던 이십대의 절반을 지나보내는 나는 이제 슬슬 알록달록하고 포근한 니트 가디건과 도톰한 양말에 눈이 더 가게 되어서 썸머 작가의 책이 그저 여름으로만 읽히진 않았던 것 같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수록 허기가 지면 안되니‘ 담요를 감고서 흐릿한 눈 앞을 훔치며 담요의 고양이 무늬를 기억하겠다는 정아의 말이 딱 선선해진 어느 날의 찬바람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루는 땀이 빼질 나는 낮과 두툼한 아우터도 모자라 담요까지 둘둘 감고 있어야 했던 밤이 공존하는 늦늦늦여름 - 초가을에 읽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데굴데굴, 이라는 글자만으로도 너무 귀여워서 웃음짓게 했던 나리의 볼링 동아리 이야기는 대학교 신입생 때쯤 누구나 기대할만한 첫사랑 썰을 듣는 것 같아 책이 끝나가는 줄도 모르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
“너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라며, 엔딩도 다 안 읽었으면서 제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어?”
“...안 읽어도 상상해 볼 순 있어.“
”그래, 상상. 그건 상상이잖아.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결국 모르는 거야.“
그 끝에 떠오른 얼굴이 있다면,.. 그건 첫사랑이 아닐 수 없다! 🤭
다정한 나리의 짝사랑과 둘 사이에 불청객이 된 경쟁자 선배와의 묘한 신경전, 매쉬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양말까지 선명하게 그려낸 이 이야기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 ❤️‍🔥 (손에 진땀이)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괜찮은 거 말고 좋은 거 하라”는 초대장을 받았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좋은 게 있어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거예요.”
수영장 데스크에 일하면서도 내부 구역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투명 창을 넘어서지 않던 미영은 같이 일하는 이모들의 표정만을 살폈다. 어쩐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말은 사실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목구비가 오똑하든, 조금 굴곡이 덜한 얼굴이든 간에 살아있다는 건 그림자가 지기 마련이니까.
“에이 모르겠다 하고 힘을 쭉 빼면 몸이 떠. 그럼 그때부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라며 같이 (수영) 하자는 화정의 말에 미영은 ‘제일 예쁘고 가장 좋아 보이는 걸로’ 과일을 고른다.

..같은 이유로 나도 한 박스에 7천원하는 무른 무화과 대신, 가을을 가장 기다리는 이유인 무화과를 꿀이 뚝뚝 흐른다는 유명한 농장에서 보석같이 담겨온 박스로 골랐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 ! 🍯
나머지 무화과도 잘 후숙될 때를 기다려 한 박스를 다 먹을 때까지, 나를 생각하며 산 마음의 달콤함을 느끼며 꼭 그런 선택을 또 이어가고 싶다. 그런 선택이 습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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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이야기할 때는 가장 작은 목소리로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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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팬심으로 드디어 이 책만큼 가까워진 기분이다.가랑비메이커의 글은 어떤 글이든 어쨌거나 그녀의 글이지만 이번엔 정말 일기장에 적은 내밀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화려한 스타의 삶 이면에 치열한 연습이 있다는 다큐멘터리처럼 말이다. 작명처럼 책을 가까이 두지는 않았던 것 같은 시절, 나에게 조금씩 젖어들어 나의 한가운데에 있는 감성을 한 번에 두드리던 글이 어떻게 쓰여진지 재미있는 비밀 얘기들을 듣다보면 작가님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다. 책 내내 좌충우돌 불안했다고 서술하지만 아주 넓은 파동처럼 작가만의 중심을 지켜내는 하루의 루틴, 오고 가는 생각들, 고백들이 참 용감하고 멋졌다.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글을 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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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천국 - 뉴욕, 런던, 파리, 베를린, 비엔나 잊을 수 없는 시절의 여행들
유지혜 지음 / 어떤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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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땅에서 보냈던 나의 시간들에 함께 잠겨서, 누군가에게는 이런 기억을 쌓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책. 무심한 듯 따뜻하고 정 많다. 나도 글을 쓰고 싶어져서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 내면의 말들을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해주어서 감사해요, 지혜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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