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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보이 - 전면개정판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5월
평점 :
16년만에 다시 만난 리버보이!
나도 제스처럼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있다.
우리 할아버지는 꽤나 멋쟁이셨다.
아침이면 잘 다려진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고 안경을 쓴 후 수동시계를 흔들어 왼쪽 팔에 차시던 모습이 23년이 지난 아직도 선명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수능을 친 다음날에 돌아가셨다.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6개월 정도 후유증으로 힘들어하셨고, 병원 생활도 6개월 하셨다. 내가 알던 누구보다 멋쟁이셨던 할아버지는 씻지도 못하고 주름 가득한 환자복만 입어야 하는 하루 하루를 무척 견디기 어려워하셨다.
연중 무휴인 식당을 운영하셨던 부모님을 대신하여 놀이공원도, 유람선도, 친척집 방문도 모두 할아버지가 해주셨다. 어린 손녀에게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고, 그 경험을 바쁜 아들 내외 대신 본인이 직접 해주셨다. 나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탔었다. 언제 어디서 만나는 누구에게나 친절하셨고, 다정하셨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그런 할아버지와 함께 여행 다니는 시간이 다였고, 그 시간이 나에게는 행복이었다.
그런 할아버지였는데 수능을 핑계로 병원에 몇 번 가보지 못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겁쟁이인 나는 아픈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언제나 건강하게 나를 지켜줄 것 같았던 할아버지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마주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무척이나 작았던 나의 유년시절이 <리버보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떠올랐다.
<리버보이> 속 제스의 할아버지는 화가다. 죽음을 앞둔 자존심 강한 예술가는 오래 전 떠나 온 고향으로 휴가를 가고자 했다. 그곳에 두고 온 자신의 유년시절을 찾아 먼길을 함께 떠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제스의 할아버지는 고향을 갑작스러운 화재로 가족을 모두 잃고 사랑했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의 타향살이는 힘겹고 치열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언제고 꺼내어 볼 수 있었던 그리운 추억을 고향에 두고 온 그는 죽음을 앞두고 그곳으로 여행을 가고자 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척이나 사랑했던 고향의 그 강이 자신을 품도록 하는 마지막 작품을 완성했다. 제스는 할아버지의 뮤즈였다. 자신을 닮은 손녀는 언제고 그리워했던 유년시절 자신이었고, 그녀를 보며 그리운 추억을 꺼내 작품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떠나는 길을 그녀가 동행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리버보이! 강과 그림을 사랑했던 소년은 세상에서 가장 본인을 많이 닮은 자신의 뮤즈의 배웅을 받으며 하늘나라로 떠났다.
16년 전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20대였고, 그리 멀지 않았던 유년시절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라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슬픈 소설로 저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40대가 되어 다시 읽은 <리버보이>는 참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소설이었다. 나처럼 비겁하지 않은 제스는 할아버지의 뮤즈로서 그의 먼 길을 행복하게 배웅했다. 이보다 더 해피엔딩이 있을까?
다시 만난 <리버보이>는 이별을 대하는 나의 생각이 성숙했음을 깨닫게 해주었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강에서 시작된 여행이 바다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강을 흐르다 결국에는 바다에 모인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도, 나도 바다에 도착할 것이다. 또 우리는 언제고 다시 만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개인적인 서평을 기록합니다.-
강은 여기에서 태어나 자기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흘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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