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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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얼룩진 눈앞의 저 낡은 도마를. 수많은 영혼들이 칼날에 베여 안간힘을 쓰며 제 죽음을 밀어내던 저 분노의 순간들을. 대륙으로 폭풍처럼 짓쳐들어 오는 제국주의자들의 총검과 피바람, 죽어가는 자들의 한숨이 압착된 저 도마를 말이다. 나는 도마 위에 엎드려 처분을 기다리다 누군가의 혀를 만족시킬 재료들이나 다름없다. 내가 과연 저 날카로운 광풍의 칼날을 비켜갈 수 있을까?" _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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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와 주방의 공통점은?
말과 맛의 공통점은?
죽음과 삶의 공통점은?
칼刀과 칼劒의 공통점은?
삶과 욺의 공통점은?

 

"모든 것의 시작은 작은 도마였으니까. 삶 아니면 죽음, 인생은 그 어떤 요리보다 담백하다." _167쪽

 

"너의 손놀림이 네 혀와 네 가족을 기쁘게 할 거야. 어서, 부릅뜬 놈의 눈을 찔러버려. 목을 따버려! 그리고 푹 익혀 고기를 뜯으며 맛을 느껴라! 너를 해치려던 맛이다. (…) 너는 오늘 비로소 재료가 너의 혀에게 안기는 기쁨에 감사하게 될지 모른다." _58쪽

 

"앙숙처럼 상대를 겨누던 칼과 매일 끓여 바치던 요리는 뜨거운 국수 한 그릇으로 화해하게 되겠지. 나는 그 마지막 순간을 저들에게서 빼앗고 싶지 않아." _273쪽

 

가족과 운명과 시대에 휘둘리는 세 남녀가 번갈아 가며 화자역을 맡아 소설을 이끌어 간다.
일제 패망 직전의 만주국:
전쟁승리에의 투지도 의지도 없지만 국가의 명령으로 관동군 사령관으로 온 일본남자 모리,
요리사로 운명지어진 아버지를 두고 숙명처럼 요리사가 되어 관동군 주방으로 숨어든 중국남자 첸,
아픈 아버지를 돌보라 나라가 원하는 것을 하라 정신무장을 하라 명령뿐인 오빠 밑의 조선여자 길순.
그리고, 도박을 좋아하는 승려, 사령관의 미식생활이 불만인 일본군 부하들...
이들이 엮는 시대의 주방과 전쟁터의 이야기.

'1분 요리'로 사람을 홀려서는 (읽는 사람 포함), 불도장, 문어죽, 선지, 해물육수 칼국수, 길순의 요리... 사이사이로 이들의 불운한 운명과 시대의 아픔, 처절한 역사가 우러나온다.


전쟁통 칼 부딛치는 소리를 도마위 칼질소리와 섞어 낸다.
그리고 그것이 어색하지가 않다.
어떤 칼 소리가 진실에 가까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전쟁통에도 사람이 먹고 산다, 물론 때로는 죽는다.
죽이기도 죽기도 하고, 먹기도 먹히기도 하고.

그 와중에 '탐미(耽味)'는 정말로 사치였을까, 아니면 도리어 본능이었을까.
오래 끓여 찐득한 사골국인데 비릿함이 혀끝에 닿는, 그런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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