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전 시대에도 그랬듯 다 대의명분이 있었다. 그는 그따위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남들이 그런 것을 놓고 떠들든 말든,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루하루를 마치는 것이었다. 그는 생존의 기술자가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되었다. 생존을 위한 기술자들." _12쪽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항상 충분히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사람들을 충분히 공포에 몰아넣는다면 그들은 뭔가 다른 것, 축소되고 줄어든 것이 되었다. 즉, 단지 생존을 위한 기술이 되었다." _128쪽


누구든지 살기 어려운 때가 있었다, 시대가 어려운 때가 있었다.

그 어떤 인생도 평온하지 않고, 누구든 생존 자체가 고난인 때였다.

그때의 소련이 그랬다고 했다.

안다는 이유로 핍박받고, 배운 것이 죄가 되고, 예술 성향인 것이 손가락질 받는.


신부가 부모가 지어 온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소년은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가 되어버렸다.

작곡으로 어느정도의 밥벌이는 가능하게 된 어느 날, 그가 공연하던 오페라에 혹평이 날아들었다. (공산당 위쪽 사람들의 관람이 있은 직후였다.)

이윽고 공연은 중단 통보를, 음악은 불가심의를 받게 된다.

원인도 모르는 채로, 주변의 작곡가들과 음악가들 이웃주민들이 한밤중에 끌려가서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사라진 이들은 군주주의자, 테러리스트, 간첩이라고 불릴 뿐이었다.

그는 승강장 옆에서 잠을 잤고, 작은 가방을 꾸려 두었으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가 아는 것은 지금이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 _91쪽


"스탈린의 러시아에는 이 사이에 펜을 물고 작곡을 하는 작곡가 따위는 없었다. 이제부터는 두 가지 종류의 작곡가만 있게 될 것이다. 겁에 질린 채 살아있는 작곡가들과, 죽은 작곡가들." _75쪽


승장기 옆에 앉은 작곡가의 가방위에 먼지가 앉듯이, 그냥 저냥 음악을 만들었다.

체제를 칭송하는 체 했다.

물론 아이러니의 아이러니까지 뒤섞은 음악이었지만, 듣지 못하는 귀는 듣지 않았다.

(레닌의 신경제정책이 시행되고는 <2천억 년 뒤에 지상천국이 온다네>라는 곡을 쓰며, 그조차도 너무 낙관적이라고 자평했다.)


공포와 수치의 시대를 겪고, 살아내고, 시대의 소음을 다 들은 작곡가는 어느 새 스탈린 시대를 '살아' 온 거의 몇 안되는 예술계 인물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시대의 소음이 또 시작되고는, 드미트리는 당의 지도자들에게 설득된다.

당의 대표해서, 나라를 대표해서 서방에 이 체제를 노래할 예술가가 그리고 연설가가 되어 주기를, 당의 사람이 되기들.


'공포의 노예'가 되어 '살 수 밖에 없었던', 시대와 장소를 잘 못 골랐던 작곡가.

'생존'에 대한 문장들이 자꾸만 손목을 잡아챈다.

그는 살고 싶었다.

결국 그는 서명을 한다, 입당원서에 그들이 쥐어 준 선언문에 연설문에 펜을 얹고 혀로 핥았다.


"갈릴레오의 시대에, 한 동료 과학자/ 갈릴레오 못지않게 어리석었다./ 지구가 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먹여 살려야 할 대가족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마다 과시하는 방식이 있다/ 가장 고집 센 자들이 가장 똑똑하다." _216쪽


"또는 그는 인간 영혼의 파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삶은 흔히들 말하듯 들판을 거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은 셋 중 한가지 방식으로 파괴될 수 있다. 남들이 당신에게 한 짓으로, 남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하게 만든 짓으로, 당신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한 짓으로. 셋 중 어느 것이든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 세가지가 다 있다면 그 결과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되겠지만." _239쪽


"이런 것이 우리를 위해 삶이 구상하는 비극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니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_233쪽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러니한 음악으로 밖에 할 말을 못하던 사람.

소심한 반항들도 결국은, 승강기 옆에서 지새운 밤들과 동료들의 사라짐의 공포속에서 아마도 생의 의지 외에는 모든 것을 놓아버렸을 지모를 비운의 음악가.

무너져 내리고 말라죽어버린 뒤 인간의 안에서 썩어가며 풍기는 악취, 아니 환상.

 

국가는 예술가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체제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렸다.

 

실화 배경인 소설이라 더 애잔.

그때의 소련이 그랬다고 했다. 한 때의 한국이 그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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