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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도종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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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한 그릇의 우동을 다 먹지 못하고 가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다 먹고, 다 누리고, 다 쓰다 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생은 언제든지 다 하지 못한 것이 남아 있는 채로 마감될 것입니다. 주어진 만큼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내 앞에 차려진 밥상을 다 먹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내 욕심입니다. 생의 다른 열차를 갈아타야 할 때가 오면 내가 하던 일, 내게 주어진 역할, 내가 다 마치지 못한 책을 남겨 두고 우리는 가야 합니다. 다 채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조금 남기고 가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_46쪽
나는 고전적 의미의 수필을 좋아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치만 다른 누군가도 충분히 겪었을 만한 경험을 놓고, 자신만의 체험감상(이라고 쓰고, 일상에서의 찰나의 깨달음이라고 읽는)을 덧붙이는.
현실에서 형이상학적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쓴, 그런 글들을 아낀다.
딱 교과서에서 배웠을 법한 그런 고정적이고 고전적인 양식의 글.
박지원의 산문집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학고재)을 애정하는 까닭도 그 이유다.
그러니까, 누구나 일상을 겪는다.
생활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공감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생각을 깨는 도끼가 되기는 어렵지.
시인의 산문집이 그래서 좋았다.
고리타분하다고 할지로 모르겠다.
어떤이는 '뭐 이리 교훈을 주려고 하냐, 하나하나에 뭘그렇게 저자는 감탄하고 심화하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의 산문집들과는 조금은 다른 이 냄새가 굉장히 즐거웠다고 말하고 싶다.
조금은 낡은, 그렇지만 먼지 냄새는 또 아닌, 두꺼운 냄새.
"여러분도 여러분의 마음을 집으로 데려오세요. 고요한 거처로 마음을 불러들이세요. 밖으로 떠돌며 정처 없이 헤매는 마음을 마음의 거처로 불러들이세요. 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지키도록 끌려다니는 마음을 풀어주세요. 그리고 쉬게 해주세요. 가장 편하게 쉬면서 가장 깊어지게 만드는 곳이 어디인지 그곳을 찾으세요." _92쪽
비 온 뒤 산사에서 새벽, 그런 것들을 풍기는 산문집을 잘 읽었다.
겪음의 끝에서 시인이 찾아낸 도끼같은 날카로움을, 우리는 차라리 읽음의 끝에서 욕심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그리고 굳이 사족같은 말을 더하자면, 시인이라 역시나 글 자체가 예쁘다.
"은빛 달도 고요히 떠 있고 바람도 숨을 가만가만 내쉬고 있는 새벽입니다. 차가우면서도 고요한 겨울 아침 풍경을 새들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 새들이 머지않아 어둠의 얇은 막을 부리로 쪼아 터트릴 것입니다. 금이 간 어둠 사이로 천천히 빛이 스며들어 번지고 새소리가 그 틈새로 울려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날이 시작될 것입니다." _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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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