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양치기의 편지 - 대자연이 가르쳐준 것들
제임스 리뱅크스 지음, 이수경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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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곳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토머스 웨스트가 책을 쓰기 전까지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가려져 있었다이곳을 찾는 시인도 관광객도 없었으며 숲의 정령이나 양치기조차 이곳의 귀중한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다.” _149 (토머스 웨스트의 <호수 지방 여행안내서(2008)> )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아름다움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고?

토머스는 틀렸다.

적어도여기 이 양치기는 자기 지역의 아름다움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현대 사회의 어두움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책이 되었다.

 

그의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에 대한 이야기그리고 그 자부심에 대한 이야기는 여름부터 시작하여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된다.

 

여름에는 그가 태어났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양치기들은 풀을 말려 양의 겨울식량을 만든다.

햇볕이 돕는 한 그것은 한도 끝도 없이 사랑스러운 일이되비가 계속된다면 여름은 겨울보다 더 냉정하고 잔혹한 것이 된다.

 

짱짱한 여름 햇볕 아래서 말린 풀을 커다란 뭉치로 만들어 헛간에 보관해놓으면 훌륭한 겨울용 먹이가 된다눈 오는 날 양들에게 먹이려고 건초 뭉치를 풀면 희미한 여름 냄새가 올라온다어떤 때는 목초지에 피어 있던 꽃들이 함께 건초 안에 섞여 곱게 말라 있다.” _97

 

목초지의 풀을 베고 나면 풀씨와 꽃가루벌레 들이 뒤섞인 두툼한 뭉치가 풀 베는 기계에 남는다또 기계 소리에 허둥지둥 수로 쪽으로 달아나버린 들쥐들의 풀 속 보금자리가 환하게 드러난다우리 목초지에는 두 그루의 두릅나무 고목이 햇빛에 허옇게 색이 바랜 채 서 있었는데그 위에 황조롱이가 앉아서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이따금 황조롱이는 들판 위를 맴돌다가 순식간에 급강하 해 땅에 있는 들쥐를 덮쳐 발톱을 홱 움켜쥐고는 다시 하늘 높이 날아갔다.” _103

 

학교는 그에게 세상으로 나가 입신양명(立身揚名)하라고여기는 아니라고 그렇게나 주장하는 데도시골 생활과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미 그 어린 때에도 확고한 가치관!) 소년에게는 불편하기만 했다.

 

학교 교육은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우리는 우리만의 선택을 한 상태였다시간이 흐른 뒤 나는 현대 산업사회에는 세상에 나가 뭔가 훌륭한 것을 이뤄내는 것이 값진 인생이다라는 강박관념이 편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거기에는 곧 시골에서 육체노동을 하며 사는 것은 별 가치 없는 일이라는 뜻이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었고그것은 나의 가치관이 용납할 수 없는 함의였다.” _91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오히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분명히 깨달았다또 현대 사회가 많은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도 깨달았다현대 사회에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극히 적고그들 앞에 놓여 있는 미래는 따분하고 암울한 뿐이어서 주말이면 현실을 잊고자 미친 듯이 술에 취하곤 한다는 것을서로를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거의 없다는 것을현대 사회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많지만 그 대가도 되돌아오는 것은 미미하다는 것을.” _141

 

거의 대부분의 가업(家業)이 그러하듯할아버지-아버지-손주로 이어지는 배움이 계속된다.

그리고 무릇 오래된 마을들이 그러하듯 마을의 역사와 약속과 규칙이 있다.

현대의 도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발전이 없는 거라고배움조차 구식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옆집과 더 가까이 지내고옆집 양에 문제가 있어 보이면 바로 문을 두들기고양 구분 표시를 서로 잘 알고이윤보다는 명예가 남는 거래를 하고.

그렇게 지역의 역사는 반복되고주로 반복되고 가끔 다른 사건들이 조금 섞인 채로 쌓인 시간들이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여름이 되고가을겨을그리고 또 봄이 된다.

 

나도 양들의 출산 시기가 되면 할아버지를 따라아버지를 따라 들판을 돌아다니곤 했다이제는 내 자식들이 철마다 목장 여기저기로 우리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배웠다아버지는 날마다 목장을 둘러보며 손주들에게 당신의 가치관을당신이 아는 것들을 가르치셨다꼭 우리 할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내 아들을 자기 할아버지를 대장님처럼 우러러보았다우리의 일들은 그렇게 한 세대가 지나도 또 다음 세대에서 고스란히 반복된다.” _310

 

할아버지가 내 눈을 들여다보는 그 순간우리는 비록 말은 없었어도 목장과 가족에 대한 수백아니 수천 가지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나는 단순히 할아버지의 손자가 아니라 그분이 일평생 해온 일을 이어 갈 후계자였고그분이 영영 만나지 못할 미래와 연결되어 있는 끈이었다할아버지라는 존재는 내 안에 굳게 들어와 살고 있다할아버지의 목소리가치관경험그분이 일군 목장그 모든 것이그것들은 내 인생과 계속 함께한다.”_142

 

헨리 데이빗 소로의 것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의 역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영국의 시골에서옥스포드 대학교를 졸업한 양치기는 시골의 노동을 새벽부터 만끽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그리고 그 할아버지가 걸었을 그 길을 양들을 이끌고 걷고 있다.

 

가축을 데리고 좁은 돌담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은 이곳에 처음 정착민들이 생겼을 때부터 늘 있어온 풍경이었다이러한 돌담길은 목장 건물과 산의 방목지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였다조상들이 수없이 걸었던 길그 위로 내 발자국이 겹쳐지고 있다그들이 살았던 삶 위로 내 삶이 겹쳐지고 있다.” _71

 

매일매일 콘크리트가 깔리는 도시에 사는 인간은조상들이 수없이 걸었을 그 길을 뒤집어 엎고는 좋다고 술에 취해 있다.

도시인의 꿈을 사는 양치기에 고충에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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