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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여자 그림 보는 남자 - 서로를 안아주는 따스한 위로와 공감
유경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7월
평점 :
“좋은 일과 나쁜 일, 그 중간쯤에 인생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림은 그것을 위로한다.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은 우울했을까, 비참했을까, 찢어지게 가난했을까, 사랑에 상처받았을까. 그림도 그 그림을 그린 사람도, 아마도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이럴 때도 있었고, 저럴 때도 그럴 때도 있었겠지. 그리고 그 결과로 그림이 있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는 책을 읽었다. 역사서도 아니고, 미술과 예술의 이론과 학파나 화풍을 분석한 책도 아니고, 그림을 이렇게 즐겨라 하는 책도 아니다. 음, 아마도 ‘위로하는 책’에 가깝겠지.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예술작품이란 예술가가 가진 근친상간, 동성애, 살인충동, 파괴욕망 등을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방식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의 창작 행위는 일종의 자가
치료행위이다. 또한 그런 예술가들의 그림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고통과 고독, 상처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그림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다” _180쪽
책 중간 중간에 그림들이 예쁘게 자리잡고 있어 시각적으로의 치유를 담당한다. (책의 별책부록으로 들어있던 미니포스터 몇 장이 사무실
파티션에 자리를 잡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봐주고 있음)
그리고 ‘그림의 이야기’를 풀어주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보듬어 준다. (심리학 책인가?) 책을 읽는 사람은 나니까, 어떻게 읽어도 상관없잖아요오…. 라고 작은 소리로 말해본다.
“여자는 자신의 인생을 살기를 원하고, 남자는 또 자기 방식대로 살기를 원해요. 각자 상대방을 다른 발향으로 끌고 가려고 하지요. 한 사람은 북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다른 사함은 남쪽으로 가려고 하거든요. 결국은 둘 다 전혀 다른 방향인 ‘동쪽’으로 가게 되죠. 둘 다 동풍을 싫어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전 확실한 독신으로 있는 거예요. 또 그렇게 남아있고 싶고요.” _21쪽 (조지 버나드 쇼 <피그말리온>의 인용 중)
“여자들은 남성보다 감각에 예민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남성들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면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다면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것이 좋다. 혹 요리를 못 한다면
멋있거나 맛있는 식당으로 데려가면 된다. 음식을 주문할
때 먹을 만큼만 시키면 안 된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음식을 시켜야 한다. 여자는 그것을 후한 애정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음식 앞에서 인색하면 완전
낭패다. 때론 여자들은 맛있는 디저트 가게를 알고
있거나 커피를 맛있게 탈 줄 아는 세심한 남자를 매력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_277쪽
그림을 보는 안목이라는 것, 그 안목을 높이고 싶다는 것. 물론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대를 위로할 그림을 만나는 것- 그것이 정말로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중고등학교 때 미술을 배운 것은 그 때문이었는지도.
“그림이라는 세상, 예술이라는 세계가 당신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모든 사소하고 비천하고 힘겹고 어렵고 짜증나고 분노할 수 있는 지점들이 새삼스럽게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타인을 이해하게 하는 접점이
될지도 모른다. 예술가와 그 그림들이 당신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건넬 것이다. 다 괜찮다고, 당신에게 느낌과 감정이 있다는 것, 당신이 뜨겁게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그렇게 살아 숨쉬는 한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그리고 예술가와 그림이 당신의 삶에 가장 큰 힘은
아니지만, 가장 아름다운 조력자로 함께할
것이다.” _7쪽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