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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화 - 1940, 세 소녀 이야기
권비영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3월
평점 :
1940년, 세 소녀 이야기- 세 소녀는 역사인가 아닌가.2016년, 그 세 소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소녀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순수하고 맑았다. "아무런 징표도 없이 손가락을 거는 것만으로 셋의 약속은 바위가 되었다. 앞으로 펼쳐질 서로의 운명에 대해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55쪽) 그렇지만 그 때는 때가 1940년대 였고, 아이들은 각각 이래저래로 태어났으며 그럭저럭 모였다. 국밥을 하는 이모집에서 신세를 지며 배우고 싶던 아이였고, 기생이 되고 싶지 않은 기생 주인집 수양딸이었으며, 나라를 팔아 배를 불리는 그렇지만 그 덕을 누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아이였다. 일본인들이 나라를 제 마당같이 깔고 앉아 있는 탓에 모든 것이 서럽고 억울하기만 했었던 때라 그들은 곧 각각의 운명을 살아낸다. 결국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그들은 각각 일본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고, 가출을 하고, 프랑스로 쫒기듯 내보내진다. 이들은 모두 기구하다. 결론을 말하면 김이 빠질 수도 있지만, 사실 1940년에는 누구라도 억울하고 기구했던 것 같다. 만주로 도망을 쳤는데도 결국은 일본군에 붙잡혀 와 탄광촌에서 일하다 죽는 자, 종 살이를 하다가 주인집 아들의 이름을 대신 달고 일본으로 넘어와 죽을 고비를 몇 번이고 목전에 둔 자, 방직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사람의손에 이끌려 탄광촌 유곽으로 흘러든 자, 조카 하나 챙겨보겠다고 웃음을 팔다가 마음까지 줘버린 자, 기생집으로 독립군의 자금을 대고 발각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 쓸개도 영혼도 내놓고 일신의 편안함을 꾀하는 자, 스스로의 신분을 못미더워하다가 '위안부'로 끌려와버린 자,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꿈을 접은 자...
세 소녀의 이야기,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딱하다. 그리고, 사실 이 소설은 그 때의 진짜 이야기다.
100년도 안된 그 시절의 이야기가 왜 이리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왜 이리도 믿고 싶지 않은건지. 그 땐 그랬다, 라고 말해줄 그 때의 소녀들이 소년들이 아직도 내 주변에 분명있는데도.
"길들여진다는 것은 무뎌진다는 것이다. 무뎌진다는 것은 천천히 스러져 간다는 것이다. 무엇엔가 저항할 힘조차 사라진, 슬픈 야합.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276쪽)
세 소녀들이 다 떠나고 나면, 잊혀지는 걸까. 무뎌지는 걸까. 글을 쓰는 것으로, 읽는 것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