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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상징
칼 구스타프 융 외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제1부. 무의식에 대한 접근. 칼 융
25. 한 개인 안에 두 개의 주체. 일반적으로 말해서 두 개의 인격이 있다는 말이냐는 고지식한 반론을 제기한다. 그렇다. 현대인이 치르고 있는 곤욕가운데 하나는 분리된 인격으로 인한 곤욕이 아니던가? 그러나. 인격의 분리 현상은 병적인 징후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무겁고 그림이 많은 것이 이 책의 특징입니다.
그림에 정신을 뺏기지 않기 위해 각 챕터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그림에 대한 해석을 읽어보고 난 후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공동저서라 각 분야마다 다른 저자들이 챕터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작가가 융의 분석심리학파들이 쓴 것이 때문에 크게 테두리를 벗어나진 않지만 점점 발전해 나가는 것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후반에엔 심리학과 물리학의 시도를 해야하는 주장과 현대미술의 상징성에 대한분석심리학의 입장도 등장합니다.
마지막엔 실제의 치료사례가 등장하는데 꿈에 대한 해석과 올바른 해석으로 인한 삶도 제시해 줍니다.
<한국의 샤머니즘과 분석심리학>의 이부영 작가도 융 학파이며 융이 주장한 공통적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전혀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나 많은 공통점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개인적인 느낌)
그런데 이부영씨가 바라보는 종교관과 칼 융이 바라보는 종교관은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데 그것은 아마도 한국의 기독교가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그러한 관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기독교와 미국의 기독교, 그리고 한국의 기독교는 전혀 다른 종교라고 생각됩니다.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에 서로가 다른 관점이 기억에 남았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무리를 종교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제3부. 개성화 과정. 마이루이제 폰 프란츠
310. 인간존재라고 하는 것은 개개의 본능. 즉. 배고픔, 권력, 성, 적자생존, 종의 보존 같은 일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메커니즘 내에서는 만족스럽게 설명될 수 없다. 그 까닭은 인간의 주된 목적은 먹는 것, 혹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적 심리 현실은 단순한 본능의 욕구를 초월해 살아있는 신비를 드러내고자 하는데 그 유일한 방법이 바로 상징을 통한 표현이다. 그리고 무의식은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종종 강력한 <우주적 인간>의 이미지를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