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6. 행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오만한 직업으로 삼고 있는 터였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들에게는 우리들의 탐욕으로부터 좀 딴 곳으로 정신을 돌릴 필요가 있었고 우리들의 저 야성적인 행복으로부터 깨어날 필요가 있었다.

10.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번씩이나 해보았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비밀'을 고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13. 이와 같이 여러사대에 걸쳐 정신이 정신을 낳는 것이며 인간의 역사는 다행스럽게 증오 못지 않게 찬미의 바탕위에도 건설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정말로 다 말해 버린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14.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는 위대한 계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두 번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계시는 행운처럼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다.


41. 밤이 다가온다. 밤과 더블어 내게 낯익은 유령들이 깨어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세번 무섭다. 해가 저물때. 내가 잠들려 할때, 그리고 잠에서 깰때.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 나를 저버리는 세번. 허공을 향하여 문을 열리는 저 순간들이 나는 무섭다. 짙어가는 어둠이 그대의 목을 조이려 할때. 한밤중에 잠깨어 나는 과연 무슨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를 가늠해 볼 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생각이 미칠 때. 잠이 그대를 돌처럼 굳어지게 할 때. 대낮은 그대들 속여 위로한다. 그러나 밤은 무대장치 조차 없다.


60. 인간의 삶은 한갓 광기요. 세계는 알맹이가 없는 한 갓 수증기라고 여겨질때 경박한 주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하는것 만큼이나 내 맘에 드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살아가는데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루하루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날들을 견디어 내려면 무엇보다고 좋으니 단 한가지의 대상을 정하여 그것에 여러 시간씩 골똘하게 매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은 없다.


142. 파스칼은 오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만을 알고 찬미하고자 했을 뿐 철학자들의 신은 알고자 하지 않았다. 그 철학자들의 신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보라. 그러면 인도의 신을 얻게 될 것이다. 가장 비개인적인 사상은 이미 그 신에게는 하나의 현현이다. 그의 속에서는 이것이 저것보다 더하고 덜하지 않으니 순수하고 부정적이다. 이 공간들의 침묵이 나를 두렵다라고 파스칼이 말할 때 그는 그 신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과 그 절대존재사이에 있는 것은 과연 공간들이라니...


160. 탐구의 종착점이 존재냐 아니면 무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도대체 탐구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 왜냐하면 대상은 매순간 발견되고 하나의 사실이 여러 사실들 사이의 어떤 관계에 의하여 대치되듯이 현실이 진실에 대치되기 때문이다. 만약 서양 사람이 무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면 아마도 그 보다는 덜 위선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행복의 감정이 존재의 표시라면. 그렇다. 존재는 실제로 있다.

천분의 일초동안 정신을 딴데 팔아보면 충분하다.

쇠사슬은 끊어져 버린다.



옮긴이의 말가운데

지식을 넓히거나 지혜를 얻거나, 교훈을 찾는 따위의 목적들마저 잠재워지는 고요한 시간. 우리가 막연히 얻고 싶은글, 천천히 되풀이 하여 그리고 문득 몽상에 잠기기도 하면서 다시 읽고 싶은 글 몇 페이지란 어떤 것일까?

말이 감동적으로 만드는 침묵이란..


독 후:

카뮈는 행복에 대하여 인간의 오만을 기본으로 삼고 탐욕으로 집중되어 있는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고 한다. 

야성적이란 표현은 야만적일 수 있는 행복이라고 생각해본다. 

그 야만적인 행복으로 부터 벗어나 아무것도 없이 낯선 곳에서 겸허하고 은밀하게 살아보라고 한다. 

그 르니에가 그리고 있는 여행은 상상의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속으로 여행. 섬에서 섬으로 찾아다니는 순례이다. 짐승은 즐기다가 죽고 인간은 경이에 넘치다가 죽는다. 끝내 이르는 항구는 어디일까? 바로 이것이 이 책 전체를 꿰뚫는 질문이다. 하지만 해답은 간접적이다. 절대와 신성에 대한 명상으로 그의 여행을 끝내고 있다. 힌두교도에 대한 말끝에 그는 그 이름을 알수도 없으며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어떤 항구, 영원히 이르지 못하며 그 나름대로 사람의 발자취란 없는 어떤 다른섬 이야기. 

그것이 행복에 머무르지 않는 위대한 정신으로 건설되는 위대한 계시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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