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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스케치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2
도리스 레싱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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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 읽고 있는 책은 도리스 레싱의 [런던 스케치]다. 단편집인데 단편 중에 <자궁병동>을 소개하고 싶다. 중증 환자들과 함께 입원한 여자가 있는데 타자의 시선과 입장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흔히 그렇듯 자기 우울과 감정에만 빠져있다.
밤새도록 그녀의 우는 소리에 더 많이 아픈 다른 환자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는다. 그녀가 쉬지 않고 우는 이유는 남편이 옆에 없기(25년간 단 하루도 남편과 떨어진 적이 없었다)때문이다. 병원 규정상 그날 밤에 보호자인 남편은 나가 있어야 한다. 결혼하고 25년이니 그녀의 나이도 대충 짐작할 만하다. 결국 우는 소리에 못견디고 다른 환자들이 못 자고 다 깨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아픈 몸을 겨우 끌듯이 다가가 애기 다루듯 그녀를 잠재웠다. 그리고 나서 자기 침대로 와서 힘든 몸을 뉘이며 짧게 말한다. “살면서 배우는 거지”
“마일드리드 그랜트는 이제 좀 나직히 울고 있었다. 그것은 음울하면서도 기계적인 흐느낌이었고 이제 그들의 신경을 몹시 건드렸다. 그들 각자의 내부에 자신의 권리와 요구 사항을 가진 달랠 수 없는 어린 아이가 들어 있었으며 그들은 그 아이를, 그리고 그 아이를 누르기 위해 자신들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82쪽, 83쪽
세상엔 육체적으로만 성장한 아기들이 참 많다. 자기 문제와 사회 문제를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내적인 성장을 얻기 위해서는 상처를 인내한 댓가를 필요로한다. 자신의 경험과 지력만 믿는다면 자기 합리화와 편협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해와 용납은 동의어가 아니다. 작가에게는 일반화된 상식을 뚫는 ‘다른 말’이 있어야 한다.
도리스 레싱은 역시 말장난이나 단어와 문장을 나열하는 글쟁이가 아니라 ‘작가’다.
사진은 레몬과 캬라멜 케잌, 유기농 커피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라도 하고 싶은 일은 이런 작가와 만나 티타임을 갖는 것이다. 오늘은 제대로 보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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