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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브라더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5년 10월
평점 :
<리틀 브라더>는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빅 브라더'가 행했던 것과 같은 국가의 감시를 다룬 소설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 곳곳에 '감시'라는 게 만연해 있다는 생각은 이제 낯설지 않은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판옵티콘 같은 단어를 배우면서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삶의 공포 같은 것을 상상했던 기억도 납니다. CCTV 같은 것을 주제로 토론도 했었지요. 그 이후로 '감시'라는 주제에 대해서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될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이렇게 되었고, 숨이 턱턱 막히는 이슈들이 나날이 터지는 요즘, <리틀 브라더>가 제게 왔습니다.
이 책의 재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책에서 묘사하는 국가의 감시가 제가 생활하고 있는 지금의 한국에 너무 많은 것들을 던져 주어서, 책을 읽는 동안 오히려 말을 잃을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끊임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건, 청소년 주인공 마커스를 따라가며 묘사되는 새로운 기술들 덕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CCTV는 사실 <1984> 적에도 나왔던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제 생각은 거기에 멈춰 있었죠. <리틀 브라더>에는 도청이나 보조인식 카메라 같은 것들도 나오지만,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감시 기술들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매일 몇 번 씩 찍는 교통카드가, 무심히 사용하는 하이패스가 사실은 감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이런 상상 때문에 소름이 돋는다거나 하는 게 오히려 이 책의 재미라니,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SF 소설이니까 여기 등장하는 기술 같은 건 다 가짜였으면 싶어요. 그런데 실제로 지금 사용되고 있는 기술들이 나오거든요. RFID라든가, 어디서 들어봤는데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는, 우리 주변에 도사리면서 모든 것들을 정보화하는 기술들... 책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현재 구현되고 있거나 구현 가능한 것들인 듯 해요. 그것이 감시에 사용되면 어떤 것들까지 가능할 것인가. 안 그래도 카카오톡 감청이니 민간인 사찰이니 하는 뉴스 덕분에 실시간으로 만나보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프로그래밍과 같은 현실의 지식들을 바탕으로 더욱 명백하고 세세하게 그런 무서운 세상을 그려내 줍니다.
이런 국가의 감시 타겟이 되어버린 우리의 가여운 주인공, 마커스는 다행히도 이런 세상을 무법천지로 누릴 줄 아는 지식을 가졌습니다. "돈은 없지만 시간은 남아도는 아이들의 능력을 결코 과소평가 하지 마라." 너무 다행이죠. 그리고 사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나이 든 어른들이 인터넷이니 뭐니를 다루는 게 좀 멍청한 구석도 있잖아요? 마커스가 그런 빈틈을 간파하고 있는 것도 다행이구요. 책을 읽는 내내 나라면 이런 감시 속에서 몇 번이나 무너졌을지를 상상하게 됩니다. <1984>에 등장하는, 마음은 국가에 저항하지만 국가의 감시와 끔찍한 폭력 속에 결국 정신도 몸도 무너지는 주인공을 기억하실 거예요. 제가 주인공이었다면 이 책은 비슷한 전개였을지도.... 하지만 <리틀 브라더>의 주인공은 다행히도 똑똑하니까, 어린 몸으로 국가에 맞서는 주인공에게 몇 번이고 "힘내! 지지 마! 이길거야!"라고 외치는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감시를 간파하고, 피해나가고, 그에 대한 저항을 구축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통쾌함이 이 책의 가장 큰 묘미였습니다.
이 책은 주인공을, 그 나이 대의 청소년들을, 그리고 국가의 감시와 통제 속에 고통받는 이들을 다정하게 바라봅니다. 피해망상이라는 단어가 이 책에 자주 등장합니다. 발음하는 것 만으로도 고통스러운 단어입니다. 세상이 약자에게 가혹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면서도, 약자의 경계심은 '피해망상'이라고 불리며 혐오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저에게도 개인적으로 국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계기가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일은 흔할지도요. 그 이후로 저에게도 그런 경계심이 있었지만, 미처 드러내진 못했죠. 그런데 이 책은 약자의 피해망상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되려 이렇게 말하죠. "피해망상을 유지해." "피해망상증이 내 친구야." 생존을 위해 피해망상을 놓치지 않으려는 주인공의 모습 그 자체가 어떤 위로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책 속의 청소년들, 마커스와 같은 '리틀 브라더'들은 이런 말까지 합니다. "25살 이상은 아무도 믿지 마!" 치기어린, 말도 안 되는 소리죠. 하지만 그런 말을 하지 말란 법이 있나요? 나이로 표현되었지만, 신뢰할 수 없는 세상에 저항하는 불안하고 힘없는 존재들을 그만큼 믿겠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1984>가 절망으로서 행동하게 하는 책이었다면, <리틀 브라더>는 이런 다정한 믿음으로 행동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씁쓸한 지점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책의 배경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이고, 주인공 마커스는 자신에게 닥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국가에 대한 믿음을 어필합니다. 미국은 자유의 국가라고 생각한다고, 나는 우리 나라가 자유를 수호할 것임을 믿는다고. 그 믿음에 배반당했을지라도 말입니다. 읽고 있자니 무척 속상하더군요. 한국을 떠올려봅니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말 대신 꼭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는 국가. 하지만 이 나라를 향해 마커스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현실에서 생생히 진행되고 있는 국가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 나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국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별 희망 없이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