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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국내 책 시장에서 책 한 권이 후끈 달아올랐다. 한강의 소설인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맨부커상의 유명 수상작으로는 [파이이야기]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한밤의 아이들] 등이 있겠다. 맨부커상은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노벨 문학상,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거론되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였다. 원래 영미작 중에서 뽑히는 상이었지만 멘부커 인터네셔널로 번역작에 범위를 넓히면서 [채식주의자] 수상이 가능했다고 한다. 말이야 쉽지 저렇게 바뀌고 나서 첫 수상작이 우리나라 작품이라는데 의의를 둘 부분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맨부커상 특성상 '되게 문학적인 작품'을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술술 읽혀서 다행이었다. 단 소설 자체가 주는 기괴하고 끈덕지근한 느낌은 마치 곡성을 연상시키듯 하는 찜찜함을 유발했다.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평범하기 그지 없었던 여자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음'을 선언하면서 주변사람들과 부딪히는 이야기이다.
[채식주의자]의 제목에서처럼 영혜의 비정상적인 성향을 한 단어로 요약 할 수 있지만 이는 다른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일 뿐, 본질적인 네이밍은 내가 위에서 언급한 바라고 본다. 즉 '채식'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1부에서 영혜는 이러한 성향을 꿈 때문이라고 역설하고 중간중간 그녀가 꾸는 꿈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그녀가 꿈 속에서 보았던 것은 자신의 내부에서 자라고 있던 폭력성,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자신을 물었던 개'의 죽음에 대한 이미지다.
그녀의 '고기를 먹지 않는 현상'에 반발했던 그녀의 남편과 친가 가족들은 그녀에게 강압적인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요즘 세상에 누가 고기를 먹지 않냐,라는 일반화는 그녀를 한계까지 몰아붙였고 결국 극단적인 상황으로 모두를 몰고 간다. 이는 '폭력에 대한 강요'로 요구되는 점이 보인다. 어쩌면 타인에 대한 강압적인 폭력. '왜 우리와 다르게 살려고 하는 거야?'. 여기에서는 채식주의자로 비춰지는 그녀에 대한 타인의 반응은 다름 아닌 폭력이었다.
[몽고 반점]에서 그녀는 더욱 더 깊은 폭력을 맞이하게 된다. 형부는 자신의 '욕망'을 담은 예술을 영혜의 몽고 반점에서 비롯하여 표현하려고 했고, 영혜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는 욕망을 담은 폭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옹호하는 것은 형부가 했던 예술에서의 꽃, 그 자체였고 형부의 뒤틀린 시선-폭력-과는 다른 종류임이 분명했다. 물론 비정상적인 성행위는 폭력인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결단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작중에서 영혜를 더 깊은 채식의 늪으로 몰고 갔음은 분명하다.
결국 [나무 불꽃]에서 그녀는 인간적인 모습을 포기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서 '식물'이 되어감으로써 자신을 완전한 비폭력주의로 몰고 갔던 것이다. 혀나 이 장의 시점인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시점에서 보자면 그녀의 비폭력적인 변화는 인혜에게는 폭력이었다. 마지막 장이 되서야 인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녀의 삶은 영혜와는 전혀 다른 , 폭력에 순응하는 삶이었다.
폭력에 맞서서 다른 길을 걷는 인물, 폭력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인물. 후자는 전자를 도우려고 했던 직접적인 인물이지만 결국 자신도 '상해가는' 중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인식한다. 폭력 속에서 '상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해설의 여지가 필요한 만큼 많은 호불호가 있을 만한 소설이었다. 읽을 때보다는 읽고 난 후가 어려웠고 해석의 무덤에서 무엇을 찾아 봐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 더 힘들었다. 한국 문학을 접하는 것은 오랜만이기도 한데 이래서 홍보의 중요성이 인식되기도 하고… 앞으로도 계속 말이 많은 소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