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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광기란 무엇인가
이병욱 지음 / 학지사 / 2022년 10월
평점 :
‘도덕’은 우리 삶의 보편적 기준으로 사회 전체에는 질서를 제공하고, 개인에게는 삶의 방향을 인도하거나 삶의 태도를 결정짓게 하여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하기도 한다.
“도덕적 광기에 사로잡힌 전체주의사회는 그 어떤 유형에 상관없이 인간을 질식하게 만들며 삶의 질을 떨어트린다.” 325쪽
‘도덕적 광기란 무엇인가’에서는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종교, 정치적 이념 등에서 비롯된 개인과 집단의 도덕적 광기의 사례를 역사와 예술에서 찾아 나열했다. 도덕적 광기의 정의를 애써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습득될 정도다.
‘도덕적 양심에 구멍이 뚫린 초자아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 상태’
‘초자아의 기능이 무너진 상태’
저자는 ‘도덕적 광기’를 이렇게 정의했다.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역임한 사람답다.
‘도덕’이라는 말은 심리학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초자아’를 떠올릴 수 있다. 한편 ‘양심’은 굳이 프로이트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통념되는 말이다.
저자는 도덕적 광기가 도덕적 관념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영화 ‘기생충’의 등장인물을 통해 가난을 특권처럼 여기며 타인의 재물에 거리낌없이 손을 대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넓게 해석한다.
‘나르시시즘의 폭주’, ‘폭주한 나르시시스트의 광기’
도덕적 광기는 병적인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저자에 비해 협의의 측면에서 나름의 도덕적 광기를 정의해본다.
히틀러, 스탈린 등 수없이 많은 피의 역사를 창조한 광기의 지도자들과 종교적 이념(이면서 때로는 정치적인)에 의해 자행된 마녀사냥, 과학자의 통제되지 않은 정념에서 비롯된 우생학의 인종개량운동, 카스트 제도, 현재도 진행 중인 일본의 반성없는 만행, 신흥종교의 광기. 그리고 고전 문학을 통해 만난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 ‘이방인’의 뫼르소 외에 드라마, 영화의 등장인물에서 도덕적 광기를 발견하게 한다.
이들이 전하는 일관된 메시지는 ‘내가 옳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이다.
도덕이라는 당위성에 개인의 병리적 판타지(phantasy)의 결합으로 생성된 비합리적 합리성이 이들을 뻔뻔하고 인간의 탈을 쓴 괴물로 만들어 폭주하게 한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 스캇펙, 마르틴 부버의 입을 빌려 이들 대부분을 악이라고 단언했다. 실존이건 예술작품의 등장 인물이건 상관없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므로, 인간 관계를 인격적 관계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사물인 ‘나와 그것’으로 간주하여 아무런 죄의식이나 수치심 없이 상대를 잔인하게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악인의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믿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사람들은 악인을 찾아내지 못 할 것이다. 악인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단순한 가정은 커다란 위험을 가져온다.” 91쪽-에리히 프롬의 말 인용
도덕적 광기의 극복을 위하여 저자는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반사회적 사회와 인물에 대한 각성으로 광기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민주주의의와 개인의 인격적 성숙을 주장했는데, 나의 내면의 광기를 발견하는 순간 타인의 광기를 알아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민주주의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자기 자신 안에 갈등을 담아낼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이들은 개인적 통제의 내면화에 실패한 사람들로, 주어진 현실을 공유하지 못하고 개인적 가치를 존중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기 발견에서 비롯된 동일시가 아니라 미성숙한 동일시 기제로 인하여 권위와의 동일시에 의존하며, 개인을 무시하고 사회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높다. 우리는 이들을 ‘숨은 반사회적 인간’이라고 부른다.” 309쪽 위니컷의 말 인용
코헛의 말에 의하면 이들의 이런 성격 특징은 성장과정에서 공감적 반응의 결여 또는 감당하기 어려운 좌절의 경험의 반복으로 자기애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어 발생한다. 이는 위니컷의 ‘환경의 적응 실패’에서 기인한 것으로 아이에게 온전히 적응해주는 ‘충분히 좋은 돌봄’을 받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도덕적 광기 현상은 성숙하지 못한 자기애적 이상화가 ‘도덕’이라는 대상이 가진 경외감과 이상적인 속성에 심리적 에너지를 집중하고 자신과 동일시하여 자기애적 전능감을 충족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자아는 팽창하여 거대해지고 자신이 추앙하는 (또는 자신과 동일시되는) 도덕적 관념만이 진리이고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과대망상(megalomania)이 일어난다.
프로이트는 이들의 ‘외부세계에 대한 외면’이라는 특징 때문에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지 않아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한다.(나르시시즘 서론_Zur Einführung des Narzißmus (1914) 참조)
저자 역시 같은 목소리를 낸다. 그들에게도 삶의 애환은 있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성격 변화를 원하지도 않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에 치료 동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스스로 대상이 되어 자기 위로를 해야만 살 수 있었던 이들.
도덕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관념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도덕적 광기에 이른 상태가 돼버린.
목적이었다가 수단이 되어버린 이들에게는 가혹한 이론이다.
이럴 때 마지막 보루로 찾는 대상은 ‘신’이다.
존재의 여부에 의심이 생길 만큼 일관되게 묵묵부답인 신은, 그다지 믿을 만한 대상은 아니다.
신이 있다면 어떻게 도덕적 광기에 희생된 이들이 생길 수 있나.. 라며 묻고 따지고 원망하다가 포기 같은 걸 한지도 오래됐다.
그럼에도 나는 신앙생활이란 걸 하고 있고 하느님이라는 존재와 관계한다.
절박한 마음으로 청원을 할 때도. 에잇~ 엿이나 먹어라! 하고 원망할 때도.
일관되게 반응이 없기에 신만큼 투사하고 좋은 대상은 없기에.
그런 용도로 신은 내게 존재한다.
#학지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