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자존감 수업 - 불안을 이기는 엄마가 아이의 자존감을 키운다
윤지영 지음 / 카시오페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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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이라면 기승전 엄마로 끝나는 이런 책이야말로 엄마의 불안감과 죄책감을 낳는 수단인것 같다. 게다가 교사가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은 저자 자신이 생각하는 문제 아동 여기서는 '자존감 낮은 아이'의 행동에 대해 엄마의 지도방식을 탓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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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블랙 드레스 - 프랑수아즈 사강이 만난 사람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보경 옮김 / 열화당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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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즈 사강의 팬이기에 살수 있었던, 읽을 수 있었던 책.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영화, 책, 문화 등에 대한 소양을 감히 요구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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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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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장면은 연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이미지로만 어렴풋이 그러졌을뿐.
아마 작가의 문체가 내가 좋아하는 것과는 달라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의 흡입력이 갈수록 대단했고, 이틀은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캐릭터와 난 사랑에 빠졌다. 특히 여자 주인공인 마틸드와.
잔인하고, 냉정한 여자. (그것이 천성적이었는지, 아니면 사회화의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하는 이에게만큼은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하고 싶은 여자.
늘 들떠있고 고조되어 있으며 그만큼 유약하고 여린 남자주인공 로토에게 그녀는 최상의 존재였다. 그녀는 여자이기도, 엄마이기도, 천사이기도 했으니까.
인간의 본능, 사랑, 갈망, 죽음, 그리고 또 다른 탄생에 대한 서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삶이란 그렇게, 늘 원하는대로, 꿈꾸던 대로, 낭만적이지만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아름답게 그려진다.
두 주인공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고 소멸이 아닌 불멸에 이르기까지.
원망과 슬픔이 시작되고 분노를 불러일으키지만, 용서는 이 모든것을 녹아내린다. 톨스토이가 떠올랐다.
어쨌든 마틸드와 로토는 결합된다. 그들의 결합은 정신적인 것일뿐 아니라 육체적이다. 그들의 육체는 끝까지 아름답게 묘사되고, 그래야만 한다. 그게 사랑의 묘사이기도 하니까.


작가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도 뚜렷하다.
여자를 사랑하는 로토, 마틸드를 사랑하는 로토,
여자의 일을 존중해주고 그들의 창의성을 인정해주자는 로토.
그러나 그는 여성을 독립적인 주체로 바라보는데, 생물학적 존재로 여성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그에게 여성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존재,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존재이다.
로토 역시 여성과 남성의 일을 동등하게 대할것을 요구하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라고 볼 수 있으나 작가는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 아니, 그 이상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마틸드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작가의 투영이다.


운명과 분노.
로토의 운명과 마틸드의 분노.
이 둘은 연결되고 결합되어 이 소설의 짜임을 구성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그에 대한 해석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고 달라질수 밖에 없다.
사랑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각기 기억하는 사랑의 모습은 다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나에게 집착으로 기억된 연애가 그에게는 순정한 사랑이었고, 나에게 잊지 못할 사랑이었다면, 그에게는 가벼운 종류의 사랑이었을 수도 있다.
로토의 사랑과 마틸드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은 사랑했고, 사랑해왔으며,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란 이야기다.
그게 바로 작가가 하고 싶은 말 아니었을까.


* 햄릿과 셰익스피어, 연극에 대한 사전 지식이 풍부하다면 더욱더 재미있게 읽을수 있을 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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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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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장면은 연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이미지로만 어렴풋이 그러졌을뿐.
아마 작가의 문체가 내가 좋아하는 것과는 달라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의 흡입력이 갈수록 대단했고, 이틀은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캐릭터와 난 사랑에 빠졌다. 특히 여자 주인공인 마틸드와.
잔인하고, 냉정한 여자. (그것이 천성적이었는지, 아니면 사회화의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하는 이에게만큼은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하고 싶은 여자.
늘 들떠있고 고조되어 있으며 그만큼 유약하고 여린 남자주인공 로토에게 그녀는 최상의 존재였다. 그녀는 여자이기도, 엄마이기도, 천사이기도 했으니까.
인간의 본능, 사랑, 갈망, 죽음, 그리고 또 다른 탄생에 대한 서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삶이란 그렇게, 늘 원하는대로, 꿈꾸던 대로, 낭만적이지만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아름답게 그려진다.
두 주인공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고 소멸이 아닌 불멸에 이르기까지.
원망과 슬픔이 시작되고 분노를 불러일으키지만, 용서는 이 모든것을 녹아내린다. 톨스토이가 떠올랐다.
어쨌든 마틸드와 로토는 결합된다. 그들의 결합은 정신적인 것일뿐 아니라 육체적이다. 그들의 육체는 끝까지 아름답게 묘사되고, 그래야만 한다. 그게 사랑의 묘사이기도 하니까.


작가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도 뚜렷하다.
여자를 사랑하는 로토, 마틸드를 사랑하는 로토,
여자의 일을 존중해주고 그들의 창의성을 인정해주자는 로토.
그러나 그는 여성을 독립적인 주체로 바라보는데, 생물학적 존재로 여성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그에게 여성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존재,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존재이다.
로토 역시 여성과 남성의 일을 동등하게 대할것을 요구하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라고 볼 수 있으나 작가는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 아니, 그 이상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마틸드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작가의 투영이다.


운명과 분노.
로토의 운명과 마틸드의 분노.
이 둘은 연결되고 결합되어 이 소설의 짜임을 구성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그에 대한 해석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고 달라질수 밖에 없다.
사랑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각기 기억하는 사랑의 모습은 다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나에게 집착으로 기억된 연애가 그에게는 순정한 사랑이었고, 나에게 잊지 못할 사랑이었다면, 그에게는 가벼운 종류의 사랑이었을 수도 있다.
로토의 사랑과 마틸드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은 사랑했고, 사랑해왔으며,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란 이야기다.
그게 바로 작가가 하고 싶은 말 아니었을까.


* 햄릿과 셰익스피어, 연극에 대한 사전 지식이 풍부하다면 더욱더 재미있게 읽을수 있을 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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