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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멀지 않다 ㅣ 민음의 시 80
나희덕 지음 / 민음사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나희덕 시인을 만났던 적이 있다. 물론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공적이 자리에서 말이다. “시의 속도”에 대한 강의를 통해서 나희덕 시인을 만났다. 예상보다 인상이 너무나도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달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설은 거두절미하고, 시인은 시집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희덕 시인은 항상 그녀의 시집을 통해서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얼핏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 그리고 그 관찰력은 그저 관찰력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관찰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받아들이게끔 해준다.
시간의 속도에 지쳐버린 인생들에게 느긋함을 알려주고, 여유로운 생활을 되찾기 바라는 시인의 마음은 시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녹아 있었다. 그것이 언제이든지 우리가 가야할 곳은 정해진 운명. 허무주의적인 인식이 아니라, 실존적 인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할 수 있었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서글퍼 하는 인생이 아닌, 그 가벼움을 되려 홀가분하게 여길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은 오늘도 창공을 비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