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의 얼굴들 - 철학은 지적장애를 어떻게 보아왔는가
리시아 칼슨 지음, 이예린.유기훈 옮김 / 심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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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장애'라는 단어에만 갇혀있었다. 이내 억압으로 시작되는 이미지가 착취, 주변화, 무력화를 거치며 차곡차곡 쌓여가더니, 인간이 만들어내는 경계와 규범, 잣대가 천연한 존재를 어디까지 끌고 내려갈 수 있는지 가감 없이 드러난다. 철학 담론의 장에서조차 주변화되고 개념적으로 착취당하는 지적장애인, 그리고 너무 쉽게 '우리-그들'로 이분화되며 주변화되는 집단들.

1913년 〈아메리칸매거진〉의 한 기사는 독자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사생아를 낳은 마을 소녀는 의학적이나 교육적・심리학적으로든 혹은 사회학적으로든 '정신박약자'일 수 있다." 도회지든, 농촌이든,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모든 여성이 위험에 처해 있었으며 그 원인이 이들의 오염된 혈통 때문이든, 아프고 병든 배우자를 잘못 택한 일이든, 아니면 여성 해방을 향한 열망이 낳은 불행한 결과든 정신박약 여성은 위험의 전형으로 상징화됐다.

p.147

위 문단을 읽으며 심호흡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1867년에 처음 발행되었다고 하니, 1913년이면 그로부터 46년 후다. 노동과 자본에 대한 철학이 깊어져가는 동안, 여성은, 그리고 지적장애인은 어떤 세상을 겪으며 여기까지 살아낸 것일까.

그럼에도, 타자의 세계를 기꺼이 바라보고 다가가며 그 일부가 되려는 태도의 존재들이 그 어딘가에 있었기에 '함께' 살아갈 가능성을 만나온 것일까? '접촉하고 포옹하는 힘'이라는 말이 좋았다. 완전한 이해는 없겠지만, 적어도 상대를 단지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만 취급하지 않는 것. '애정 어린 무지'와 더불어 타자 존재 그대로의 곁, 그의 현존 속에 있는 것. 그렇게 다시 나의 현재를 감각하고 바라본다.

1913년 〈아메리칸매거진〉의 한 기사는 독자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사생아를 낳은 마을 소녀는 의학적이나 교육적・심리학적으로든 혹은 사회학적으로든 ‘정신박약자’일 수 있다." 도회지든, 농촌이든,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모든 여성을 위험에 처해 있었으며 그 원인이 이들의 오염된 혈통 때문이든, 아프고 병든 배우자를 잘못 택한 일이든, 아니면 여성 해방을 향한 열망이 낳은 불행한 결과든 정신박약 여성은 위험의 전형으로 상징화됐다. - P147

나는 지식인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도 말하고 싶다. 즉, 있는 그대로를 서술하되 그것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 혹은 지금과 같은 방식이 아닐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생산적이다. (⋯) 내가 보기에 역사에 의존하는 것이 의미를 갖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역사는 지금 존재하는 것이 언제나 그래왔던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가장 자명해 보이는 것조차도 불안정하고 취약한 역사의 과정 속에서 만남과 우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됐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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