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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9월
평점 :
"증오는 가장 파괴적인 형태의 경멸이며, 그 무엇이든 짓밟는 혐오이다."
한 사람을 파괴하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한 집단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동네는 그리 관리가 잘 되는 곳은 아니다.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담벼락, 듬성듬성 방치된 쓰레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마주치는 모습은 거리 흡연이다. 누군가를 파괴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도 담배 연기가 얼굴에 닿을 때였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난들 어떻게 누군가를 해칠 수 있나. 그 생각은 길어야 몇 초, 냄새가 걷히며 함께 사라졌다. 대신 속으로 욕을 삼키고 걸음을 재촉했다. 사소한 불편함이, 한순간의 불쾌함이 어떻게 한 사람을 파괴하고 싶다는 충동으로 번질 수 있었을까. 오스트리아 출신 법정신의학자 라인하르트 할러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증오의 역습>(2024년 9월 출간)이라는 책에서 증오는 사소함에서 시작하며 생각과 행동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자란 증오는 "오로지 상대를 무릎 꿇리고 파괴하려고 달려들 뿐"(8쪽)이다.
할러가 오랜 시간 지켜본 증오는 백해무익하다. 책 띠지에 따르면 그는 약 40년 넘게 임상 경험을 쌓고 500건이 넘는 프로파일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법의학자로서 마주한 사례를 책 곳곳에 촘촘히 배치했다. 아무 말 없이 출근했다가 권총으로 상사의 머리를 쏜 사람, 양보 운전에 고맙다고 말하지 않아 상대 운전자를 폭행한 사람, 뒤통수가 비대칭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약물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 증오를 일으키는 트리거는 하나같이 사소했지만 결과는 파괴적이었다.
할러는 증오를 오늘날 인간 사회에 국한하지 않았다. 그리스 신화 속 아트레우스는 동생 티에스테스에게 복수하려고 그 아들들을 죽여 고기로 만들어 먹였다. 형제는 그렇게 서로를 파멸시켰다. 증오는 그만큼 오래전부터 있었고 어떠한 경우에는 쓸모도 있었다. 하지만 그 쓸모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저자는 진화가 증오보다 친근한 태도와 배려하는 자세를 더 나은 생존 전략으로 채택했다고 말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화는 '악함'을 승자로 인정하지 않았다."(41쪽)
그렇다면 증오는 정확히 어떤 감정일까. 화, 분노, 경멸, 혐오는 이 책에 등장하는 증오의 이웃이다. 할러는 화가 대체로 사람을 향하고, 분노는 공격이 성공하면 이내 사그라든다고 말한다. 증오는 이와 다르다. 부정적 감정이 오랫동안 자리를 잡다가 어떤 자극을 계기로 한꺼번에 터져 나온 뒤 천천히 가라앉는다. 이 감정의 분출은 물건 또는 자기 자신에게까지 향하기도 한다. 경멸과 혐오는 상대를 밀어내고 거리를 두지만, "증오는 오로지 죽음으로 향한다"(116쪽)라는 저자의 말처럼 증오는 언제나 '파괴'를 목표로 삼는다. 이렇게 파괴만을 향해 나아가는 감정을 할러는 한 권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 책의 원제를 직역하면 '어두운 열정: 증오가 어떻게 생겨나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가'이다. 제목 그대로 저자는 지금껏 언급한 책의 내용에 더해 시기, 질투, 탐욕, 복수심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감정에서 증오의 뿌리를 추적한다. 열다섯 개의 장에 걸쳐 증오가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사례도 보여준다. 이렇게 폭넓게 짚어주는 덕에 이 책은 증오라는 감정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데 능하다. 다만 다루는 것이 그만큼 많아 깊이 설명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애초부터 책 한 권으로 증오라는 감정의 전모를 파악한다는 게 무리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할러는 마지막 두 장을 들여 증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도 제시한다. 그는 증오를 회피하기보다 이름을 붙이고, 원인을 분석하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말한다. 자기계발서를 여럿 읽어본 독자라면 이 처방전에 기시감을 느낄 법하다. 40년 동안 임상 현장에서 증오를 해부한 저자의 결론치고는 조금 평이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럼에도 이 평이함을 곧바로 결함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 책의 힘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증오는 시기와 질투처럼 사소한 감정에서도 출발하고, 그것이 결코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것. 처방은 평이하게 느껴졌지만 그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만큼은 평이하지 않았다.
세상은 이미 증오로 얼룩졌다. 미국-이란 전쟁, 묻지 마 살인, SNS 속 숱한 혐오와 조롱, 심지어 자신을 향한 증오까지. 증오가 없는 세상은 오리라 낙관하기 어렵다. 할러는 내가 품은 증오를 이겨 내지 못한다면 증오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개인이 모이면 집단을 이루고, 집단이 모이면 사회를 이루지 않는가. 그렇기에 할러의 제언은 "세상을 바꿔야 한다"라고 애쓰기보다 나 자신부터 들여다보는 편이 그 사회에 더 가깝다는 소리로 들린다. 그런 점에서 할러가 증오를 해부한 끝에 마지막 두 장을 일종의 자기계발서처럼 할애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이 책은 증오를 없애는 사회 시스템이나 정책을 제안하지 않는다. 대신 그 시작을 개인에게 돌려놓는다. 증오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도, 결국 증오를 이겨 낸 개인들이 모여야 온다는 것. 이 책은 그 출발점을 짚어준다는 점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