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1 - 인류의 탄생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1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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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1 인류의 탄생

유발 하라리 지음

다비드 반데르 묄렝 각색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김영사)

기발한 만화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으로

쉽고 재밌는 또 다른 <사피엔스>가 탄생했다.


<사피엔스>의 명성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그 내용이 어떻게 만화로 구현되었을까 궁금했다.


-


현대인은 모두 호모 사피엔스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존재는 신비하다.

사피엔스가 역사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수많은 필연과 우연이 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의 섭리 속에서도 설명될 수 있고,

사회적 이유에서도 설명될 수 있고,

철학적 사유에서도 설명될 수 있는 것 같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함

인간의 사회적 능력을 향상시켰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능력은

낯선 존재와의 협력을 가능케 만들었다.

낯선 존재를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동물보다 교육하고 사회화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대부분의 포유류는 자궁에서 나올 때

유약을 발라 가마에 구운 도자기 같은 상태야.

모양을 다시 잡으려고 하면 흠집이 나거나 깨져 버리겠지.

인간은 자궁에서 나올 때 말랑말랑한 유리 같은 상태야.

그래서 유리공예처럼 돌리고 늘리면서

자유자재로 모양을 만들 수 있지.

책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1> p.33

이처럼 인류는 불완전하게 태어나,

완전해지는 과정을 거치며 살아간다.


역설적으로 인간 아기의 무력함이 축복이 된 셈이다.

특히 새로운 의사소통 기술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힘을 합할 수 있게 되었다.

사피엔스는 어떤 동물보다 잘 협력하는 법을 터득했다.

사피엔스는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협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사피엔스의 능력은

인지혁명을 만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사피엔스가 세계를 지배하는 건

허구를 꾸며 내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모두가 같은 허구를 믿는 한

모두 같은 규칙을 따르죠. (…)

우리 사피엔스는 언어를 단지 설명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가공의 현실,

즉 허구를 창조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어요!

책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1> p.82

7만 년 전의 인지혁명은

종교, 교역, 복잡한 사회질서를 만들었다.

3만 년 전에 우리가 가진 건

돌촉을 장착한 창이었지만

현재는 미사일, 원자력, 핵무기를

만들어 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다.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인지혁명을 거쳤기 때문이다.

인지혁명을 통해 생각을 공유하고,

공유된 생각을 기반으로 공감하고,

공감을 기반으로 협력하고, 신뢰한다.

이 과정이 없었더라면 사피엔스는

여타의 종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책에서는 이를 통찰하며 한 가지 경고를 한다.

바로 호모 사피엔스가 대륙 간 연쇄살해범이라는 것이다.

사피엔스가 이렇게 지구에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종들의 희생이 뒤따라야 했을까.

우리는 생물학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달갑지 않은 훈장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유죄입니다.

책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1> p.242

초기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들을 사냥하는 모든 과정에서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안다.

동물보호, 환경보호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지키려는

논의가 활발해진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건 더 나쁘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먹이사슬의 최강자가 되었으니

우리 모두는 우리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인류는 너무 빨리

생태계 꼭대기로 도약하는 바람에

생태계가 적응할 시간이 없었어.

인류 자신도 적응하지 못했지.

세계 최고의 포식자들을 한 번 보렴.

대부분 위풍당당한 생물들이야.

수백만 년의 지배가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지.

사피엔스는 급부상한 탓에

권력을 잃을까 봐 항상 전전긍긍하는

독재자와 비슷해.

책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1> p.37

우리가 정말 지혜로운 호모 사피엔스라면

근시안에서 벗어나 멀고 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먹이사슬의 최상위 계층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증명하듯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의해

꼼짝없이 무너지는 게 인간이다.

자연재해 앞에서 꼼짝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자연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잘난 게 없음에도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적 능력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우리는 생태계 꼭대기로 도약했다.

그러나 항상 기억하자.

꼭대기에 있는 존재는

그 자리를 유지하거나, 내려오거나 둘 중 하나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드라마 ‘상속자들’의 슬로건이다.

지구로부터 지구의 유산을 상속받은 인간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을 위한 상생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느끼길 바란다.

그걸 전하려는 것이 <사피엔스>를 저술한

유발 하라리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시리즈는

Vol.1 인류의 탄생 (2020)

변방의 유인원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Vol.2 농업혁명 (가제, 2021)

수렵채집을 하던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한곳에 모여 도시와 제국을 건설했는가?

Vol.3 인류의 통합 (가제, 2022)

인류는 어떻게 신과 국가,

돈과 법을 신봉하게 되었는가?

Vol.4 과학혁명 (가제, 2023)

앞으로 천 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렇게 총 4개의 시리즈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서평은 첫 번째, 인류의 탄생을 읽은 것이다.

누구든지 읽었으면 좋겠고,

누구든지 읽어보면 생각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을 풍요롭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생태계에서 꼭대기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가.

그리고 꼭대기에 설 때까지

얼마나 많은 도움이 있었는가.

오만하여 그 역사를 잊지 말자.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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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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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그 동안 정호승 시인이

등단 이래 써 온 열 세권의 시집,

천 편이 넘는 시 중에서 고른

60편의 시가 산문과 짝을 이루어 실렸다.

정호승 시인은

“지금까지 저는 시는 시대로 시집을 묶고,

그 시를 쓰게 된 계기나 배경은

산문집으로 엮었는데

어느 시점에는 시와 산문은 별개 장르지만

서로 하나의 영혼과 몸을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시와 산문이

한 몸인 책을 소망해왔습니다.

이 책은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라고 전한 바 있다.

-

시와 산문에 대하여

시를 얼마 만에 제대로 읽어보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은 지하철 기다릴 때 스크린 도어에 써 있는

시를 읽는 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사실 시를 엄청 좋아하지는 않는다.

좋게 말하면 절제된 표현으로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무슨 말을 전하려는지

잘 모를 때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골라 읽은 이유는

요즘 마음이 많이 지쳐있는 것 같아서

가볍게, 마음 편하게 글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했던 걸 보면

시 자체는 좋아하는데

시 읽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시는 수능 공부할 때 참 많이도 읽었다.

나는 문과였지만 시가 어려웠다.

나는 나름대로 시를 이해하고, 의미를 찾았는데

출제자의 의도에는 맞지 않았던 경우가 꽤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시의 의미를 외워가며 공부했다.

이런 시구가 나오면 이런 의미,

이런 어투를 사용하면 이런 의도.

이건 어떤 형식, 이건 어떤 내용.

이런 식으로 시를 읽었다.

그래서 여전히 시를 읽을 때 이런 버릇이 남아서

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시와 시인을 분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이번 책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나의 그런 버릇을 조금씩 버리며

시를 읽으려, 음미하려 노력했다.

책에서는 마치 프롤로그처럼

먼저 시를 보여준다.

그리고 뒤에 수필을 보여주면서

시의 내용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읽다보니

시와 산문은 하나의 영혼을 공유한다는 말이

시와 산문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시 두 편을 소개해보려 한다.


*


바닥에 대하여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책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p.55 전문


*


인생은 결국 바닥에 굴러떨어지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거였다.

바닥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바닥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한 거였다.

(…)

그런데 잘 생각해보게.

자네가 지금 주저앉아 울고 있는 바닥이

자네를 죽음의 나락으로 빠져들지 않게

힘껏 받쳐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얼마나 감사한가.

바닥은 원망과 부정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감사의 존재야.

자네는 바닥을 그냥 딛고 일어서기만 하면 되는 거야.

책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p.58-59


-


바닥이 존재함에 감사하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평가를 좋아하는 우리 사회는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재주가 있다.

그래도 바닥이 있기에

떨어지는 건 언젠가 멈춘다.

바닥에 닿으면 아프지만,

마침내 끝에 닿았다는,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그런 마음을 준다는 것이다.

참 좋은 마인드인 것 같다.

그런데 더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도

더 나빠지기도 하는 상황이 꽤 있다.

바닥인 줄 알았는데 늪이었다면,

나는 그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라면,

그런 바닥에도 감사할 수 있을까?

괜히 한 번 생각해본다.


*


봄길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책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p.229 전문


*


아무리 폭설이 내린 혹한의 길을 걷는다 할지라도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걸어가는 길이 봄길이 된다.

내가 스스로 사랑이 되어 걸어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백경학 선생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백경학 선생은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로,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을 목표로 한 비영리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책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p.255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다.

나의 인생은 어떤 길인가.

나는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저 먼 훗날 내 길을 돌아보았을 때

나름 괜찮은 길을 걸었노라고

판단할 수 있기를,

누군가가 나의 길을 보며

위안을 얻기를 바라본다.


-


정호승 시인이 들려주는

삶의 노래, 삶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누구든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책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추천한다.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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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물리학 -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에서 양자과학 시대 위상물질까지
한정훈 지음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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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통찰하는 경이로운 인간의 감각.

 

과학은 언제나 흥미롭고, 경이롭고,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지평을 열어준다.

개인적으로 과학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공부하는 학문은 정답을 특정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매력이라면

과학은 정답으로 다가가는 '진리성'이 매력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학문의 매력을 찾고, 향유하는 건

상상 이상의 쾌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럼에도 고등학생 때 문·이과 공통과목으로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을 공부한 게

학문으로서 과학을 배운 전부다.

내신 좀 잘 받아보겠다고 아등바등 공부했었기 때문에

어렴풋하게나마 기억나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어디 가서 배웠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더군다나 물리는 중학생 때 이후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

상식 수준의 물리 원리를 제외하면,

물리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그래서 이제까지 물리학은 나의 허영이었다.

 

문과의 꽃이 문학, 사학, 철학이라면

이과의 꽃은 물리학이라고 했던가.

 

나에게 물리학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운

그런 학문이었다.

 

자연의 언어는 수학인데, 수학을 잘 못하기도 하고,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 공부가 늘 힘들었다.

 

나에겐 수학을 인간 사회의 언어로 번역한 책이 필요했다.

 

<물질의 물리학>은 그런 점에서 참 놀랍게 번역된 책이었다.

흥미로운 비유, 유려한 설명들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이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물리학 저서를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심지어는 수학을 다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간 사회의 언어로 번역된 책도 참 놀라운데

이걸 자연의 언어인 수학으로 살펴보면 얼마나 놀라울까.

나도 그런 학자들의 감정을 같이 느껴보고 싶었다.

 

*

자석은 왜 자석인가?’란 질문의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물리학자들은 차츰 더 효과적인 기억소자를 개발해왔다.

금속은 왜 전기를 통하는가?’란 질문의 핵심에는

전자가 고체 속에서 존재하고 이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그 이해를 통해서 우리는 반도체를 이해하게 됐고,

반도체의 성질을 조작하는 법을 배웠고,

그 궁극적 결과물로서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문명을 꽃피웠다.

<물질의 물리학> p.101

*

 

자연 앞에서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일까.

그 놀라운 원리들을 통찰하는 경이로운 존재인 것인가.

하나의 놀라운 발견은 세상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

 

참 모를 일이다. 간단한 원리에 대한 고민이

이토록 세상을 바꿔 놓을 줄이야.

 

진리탐구를 향한 그들의 집념을 닮고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면서도

자신의 학문을 자신하는, 자신의 집념을 믿는

그런 태도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 정말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이야기만 나눠보자면,

 

플라톤은 데모크리토스의 학설에 반대하여

플라톤 나름의 우주관과 물질관에 대해

기하학적으로 <티마이오스>를 저술했다.

물질관을 요리할 수 있는 물리학적 재료가

너무도 부족했던 시대임에도 플라톤은 세상을 파헤치고자 애썼다.

 

오너스는 기체를 액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절대온도에 다다르고자

세계 최고의 저온 냉장고26년 간 만들었다.

이 놀라운 냉장고 덕분에 초전도체도 발견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양자 홀 물질', '위상물질'의 발견으로도 이어졌다.

 

맥스웰은 빛의 본질에 대한 최초의 올바른 이해를 했다고 평가받는다.

빛도 물질인가? 빛도 원자로 이루어져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면서 비로소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에

들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

과학적 발견이 성숙해져 공학적 개발로 이어지고,

그 파급효과는 일상생활로, 경제로 흘러넘친다는 주장을 종종 접한다.

이른바 '과학적 낙수 효과'.

<물질의 물리학> p.139


이들 외에도 뛰어난 물리학자들은

자신의 학문을 믿고,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그들의 그러한 태도가 있었기에

현재의 놀라운 과학발전이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이런 말을 한다.

저자가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들을 많이 설명한 것은

물리학의 영웅들이 생각하고, 활동했던 지적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솔직하게 다루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뛰어난 물리학자들에게는 안목이 있고,

자신의 안목을 믿고,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힘들게 덤불을 헤치면서 개척한다고 말한다.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세계, 물리학의 세계를

그토록 열망하여 자신의 인생을 바쳐 연구한

그들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들의 놀라운 발견과 그 흐름을 조망하고 싶다면

<물질의 물리학>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놀라운 세계에 발을 들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물리학의 위대함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평생을 바쳐 연구한 업적들이

책 한 권으로 나에게 흡수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두고두고 읽으며, 물리학에 더 다가가고 싶다.

 

세상 만물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 원자를 이해하는 유일한 도구인 양자역학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물질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놀라운 세상을 보여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우리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양자물질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중에서도 양자역학적 특성이

독특하게 발현되는 물질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배움이 부족해서, 물리학을 잘 몰라서

이 책을 이 정도로 밖에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조금은 더 풍부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내가 되었길 바란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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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수리 공장
이시이 도모히코 지음, 양지연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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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렇게, 어떤 식으로든 현재를 보내고 나면 지나간 일들,

그 때 느꼈던 감정들은 우리의 머릿속 어느 한편에

기억이라는 형태로 저장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억을 추억한다.

어떤 기억은 계속해서 다시 꺼내보고 싶을 만큼 소중하지만,

어떤 기억은 차라리 잊어버리고 싶을 만큼 진저리가 난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그 날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 순간들 위에 서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쌓아 꿈꾸는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우리 인생의 절반은 내가 무언가를 저지르는 시간이고,

나머지 절반은 내가 저지른 일들을 수습하는 데에 사용하는 시간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때로 추억에 덮어쓰기과정을 거친다.

나쁜 추억을 다시금 복기하고, 반성하며 더 나은 추억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번 책 <추억수리공장>은 이렇게 나쁜 추억들을 수리하여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주는 공장 속 존재들과

그 모든 걸 잊고 그저 미래로 나아가려는 현실 세력들 사이의

갈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남들보다 빨리, 누가 정해 놓았는지 모를,

결승선에 다다르기 위해서

과거와 현재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순간으로 여겨진다.

 

작중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메모리체인사람들은

우리가 '이런 과거에 매여 미래를 위한 현재를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변화하는 현실을 회피하게 만드는,

미화된과거를 쫓기만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는 잊고,

앞으로의 일들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냄으로써 옛일의 가치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추억을 지우고, 추억을 보관한다.


 

*

일기, 사진, 동영상 등 그때그때의 추억을 곧바로 보관할 수 있는 서비스.

남보다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애플리케이션.

줄거리도 없이 그냥 지금 즐기라고 만들어진 게임.

그럴싸한 명칭이 붙었지만 모두 사람들의 추억을 보관한다고 내세우며

지금 이 순간의 재미만 추구하고 과거의 일도 미래의 일도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p.177)

 *



그러나 즈키, 지사마 등 추억수리공장을 운영하는 존재들은

오히려 과거를 추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지나온 과거를 그저 순간의 시간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들을 반성하고, 성찰하고, 교훈을 얻음으로써

아름답게 회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저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으로 생활과 시간이 관리되면서 잇달아 쏟아지는 정보와 광고에 쫓기고 있어.

주위에 흘러넘치는 정보가 지금 이 순간을 소비하기 위한 것으로 가득 차 있지.

그러니 추억을 잘 수리해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바꿀 시간이 없어.

() 현실을 바꾸자고 주장하기는 쉬워.

하지만 무엇보다 과거를 기억하고 돌아보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태도가 중요한데 말이야.

(p.205)

*


 

책의 내용이 우리의 현실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볼 시간도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순간에 적응하기 바쁘다.

 

하지만 '트라우마', 혹은 '나쁜 추억'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힌다.

어쩌면 가장 좋은 현재를 사는 방법은

가장 좋은 과거를 만드는 것일 수 있다.

 

좋은 토양 위에 좋은 작물이 자라날 수 있듯이

우리의 과거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온전한 나의 선택과

경험들이 모인 일종의 인생 비법서와 같다.

잘못한 건 반성하여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고,

잘한 건 또 해내거나, 발전할 수 있도록 기억하는 등

그 때 그 때의 행적을 통해 교훈을 얻는 시간이다.

 

때로 내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면,

어떤 선택의 기로 위에 서 있다면,

과거의 내가 행한 일들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기억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별 거 아닌 내용 같다가도 깊게 생각해보고자 한다면

한없이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다.

 

책에서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한다.

하나의 의미에만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

여러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하면 그걸 손에 든 사람에게서 또 하나의 이야기가 태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과거의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고

미래만 바라보며 달리는 현재를 보내는 것과

조금은 느려도 확실히 과거를 수리하거나,

좋은 기억을 되새기는 현재를 보내는 것 중에

무엇이 옳은지는 알 수 없고,

특정할 수도 없다.

분명 각각의 가치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둘 중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던 상관없이

심신이 지쳐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한 마디를 선사한다.



다들 지름길로 가고 싶어 하죠. 하지만 그런 길은 없습니다.

이쪽으로 갔다가 잘못 왔다는 것을 깨닫고 저쪽을 갔다가 잘못 왔다는 것을 깨닫죠.

하지만 어느 쪽이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가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돌아가게 돼요.

지름길은 앞질러 가는 길이 아니랍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선택한 그 순간 가장 최선의 길이 바로 지름길이지요.

(p.214)

*


 

미래를 지향한답시고 나보다 앞선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될 때,

지나간 일들에 지쳐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을 때,

자신을 깎아내리기보다는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경로를 살펴보자.

 

힘든 시간을 이겨낸 기억,

무엇이든 잘 해냈던 기억,

행복한 기억들을 되새기다 보면

언젠가 나쁜 기억들도 극복해낼 수 잇을 것이다.

 

내가 살아온 행적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특별한 길이니까.

그 길을 돌아보고, 새로운 의미를 찾는 모든 과정은

머지않은 행복이 될 것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해주는 책 <추억수리공장>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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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무리, 왜 무리지어 사는가
마크 모펫 지음, 김성훈 옮김 / 김영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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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섭리 속 인간, 그리고 사회

인간무리, 왜 무리지어 사는가 (마크 모펫 지음, 김성훈 옮김)



 

인간은 때로 우리가 자연을 지배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세상을 전유하기 쉬워졌기 때문일까?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면서, 별개인 것처럼 행동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자연의 다른 종들과 공유하는 특성을 상기시킨다.

인간이기 이전에 자연의 일부로써 동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책에 대한 흥미가 반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놀라운 건, 자연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뒤

우리가 여타 생물들과 어떻게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파악한 것이다.

 

작가가 자연스러운, 자연적인 인간을 고찰하고자 해서 그랬던 것일까?

사실 이 책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획기적인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는 개념들, 널리 알려져 있는 개념들 사이를

촘촘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연이라는 기틀에 입각해 인간 사회를 조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자연적이고, 기본적인 생각을 담은 책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인간과 사회, 개인과 사회, 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기틀이 잡힐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각자 나름의 흥미로운 나래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생각의 얼개를 잡고 있었던 것들이 뚜렷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개인과 사회에 대해 다소 범박하게 배워서

생각과 생각 사이에 빈틈이 꽤 많은 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 책을 지금이라도 만나 그 빈틈을 채워나갈 수 있음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

 

국가를 떠올리든, 어떤 부족을 떠올리든, 심지어 동물의 무리를 떠올리든 간에

한 사회란 단순한 가족을 넘어 비슷한 다른 집단과 구분되는 공동의 정체성을 갖고,

세대를 거쳐 끊이지 않고 유지되는 개별 집단을 말한다.”

<인간무리> p.43

 

인간무리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단어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가 곤충학자라서

사회에 대한 나름의 특이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나니 같은 듯 다른느낌을 주려고 한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인간은 동물이지만, 여타의 종이 누리지 못하는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 시작을 가능하게 만든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설명한다.

 

개인들이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익명을 포용하는 힘.’

그리고 자발적으로 사익을 지양하여 공익을 추구하는 힘덕분에

인류는 다른 동물과 달리 넓은 지역에 걸쳐 커다란 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

 

저자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설명하면서

저자도 그의 생각에 일부 동의한다고 말한다.

모든 사회는 거기에 속한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사회적으로 구축되는 공동체이다.’라는 생각이다.

 

인간은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을 일종의 이야기로 바꾸어 놓고

그것이 전하는 바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해석한다.

더 나아가 그 이야기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확장되어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사회적 규모의 이야기로 바뀐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 더 큰 이야기가 제시하는 기대의 그물망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는 일, , 결혼 등에 대한 규칙과 기대가 담겨있다.”

<인간무리> p.275

 

인간은 사회에서 타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적인 정체성을 인지해 간다.

공동의 표지들을 인식함으로써 나는 어떤 집단에 있구나.’를 인식하는 것이다.

 

외부자를 향한 폭력이 사회를 온전히 유지시키기 우해 부과되는 의무이든 아니든,

자기 자신을 외부자, 특히나 적이라 여기는 존재와 대비시키면

우리 사회를 일상의 중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욕망을 통해 하나로 뭉치게 된다.”

<인간무리> p.369

 

인간은 타인을 대할 때만큼은 동물적이다. 나와 다르다고 여기는 순간 경계하는 것이다.

나의 무리에, 집단에 속하지 않는 개체를 외면하고,

폭력을 가하기도 하는 건 동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그러나 인간이 여타 동물과 다른 이유는 우리는

겉으로는 우리와 공존 불가능해 보이는 타인들과의 관계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종들과 달리 다른 집단의, 익명의 타인을 포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도, 혹은 국가 내부에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도

나와 다른 특성을 가진 집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혹은 그들을 나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내 생각대로 전유하고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공존한다. 여러 자본을 공유하고, 교역하며, 소통한다.

이것이 인간 사회가 특별한 이유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룬 과학적 발견들이 더욱 정교해져서 타인을 포용하고,

익명의 개체들을 포용하는 힘을 강화시키는 것이

사회의 폭력과 갈등을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회역사적인 관점에서 이런 논리를 펼치는 건 많이 경험했지만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건 처음이라 상당히 흥미로웠다.

 

***

 

인간 사회들은 자원을 두고 벌이는 경쟁을 줄여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고

함께 협력함으로써 훨씬 큰 이득을 얻는데,

다른 동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인간무리> p.380

 

저자가 수도 없이 언급한 다양한 생물들의 사회들과 확연히 차이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침팬지, 보노보, 아프리카사바나코끼리, 개미 등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종들 중에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순수한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나의 본성이 억압되는 걸 용인하는 종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설령 보호하고, 부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체 보전이라는 본능에 의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함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인을 위해 나의 본성을 자제할 줄 안다.

그게 도덕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익의 지양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개체의 이익 보호.

이를 테면 개인의 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공익의 추구로 이어진다.

 

모든 사회는 그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가지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따라서 본질상 사회 구성원이 되는 일은 선택권을 줄여 자유의 상실을 가져온다.

() 사람들은 자유를 소중히 여기지만 사실 자유에 가해지는 사회적 제약 역시

자유 그 자체만큼이나 행복에 필수적인 요소다.”

<인간무리> p.581-582

 

물론, 사회가 실질적인 것인지, 명목에 불과한지에 대한 논란은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저자는 사회를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유효하고 실질적인 힘이기 때문에,

원자와 분자를 결합시키는 물질적인 힘만큼이나 구체적인 사실이라고 보았다.

이런 관점이라면 위와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고, 나도 이 관점에 동의하는 바이다.

 

***

 

이처럼 어떻게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 사회에 대한 특성들을

자연의 특성을 덧붙여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과학적으로 인간 사회를 파고들기 때문에

몇몇 현상들을 설명하는데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과 같이 생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인간과 사회를 고찰하는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해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생각의 새로운 관점이 열리는 흥미로운 느낌을 경험하고 싶다면,

마크 모펫의 <인간 무리 인간은 왜 무리지어 사는가?>를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

 

이건 논외일지 모르겠으나, 인간과 자연에 대한 나의 생각 한 가지를 덧붙여 보고 싶다.

인간은 분명 다른 생물 종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고력, 세상을 전유하는 방식,

현상 너머의 세계까지 향유할 줄 아는 신비함까지.

가히 신의 걸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의 논쟁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놀랍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듯이 인간의 행동들은

자연의 동물들 속에서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그 특성을 기반으로 인간이 배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

우리를 가르쳐 줄, 우리의 기반이 된 자연이 사라지는 건

결국 우리 존재의 생존 여부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정말 세상을 전유하려면 오히려 전유하겠다는 생각이 아닌,

있는 그대로 공존하는 모습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건 수많은 생물 종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그런 생물들의 익명성을 포용하는 힘,

인간 무리의 이익을 스스로 지양하여 자연 전체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는 힘,

그런 힘을 진정으로 추구하고, 증명해 나가는 일이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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