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아트 디렉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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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는 매거진이다
유정미 지음 / 효형출판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 "잡지는 매거진이다"는 잡지에 관한 책이지만, 잡지에 대한 모든 이야기(개론)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실제로 만난 적도 없고,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고, 분야도 확실히 다르기 때문에 선배이자, 선생이면서 실제로는 아무 관련도 없고, 앞으로도 특별한 이변이 없는한 관련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잡지는 매거진이다"를 구입해서 읽은 건 2002년 아마 이 책이 나오자마의 일일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책에 관한 책은 나름으로 구할 수 있어도 잡지에 관한 책은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다. 저자 자신도 국내에서 잡지에 관한 책으로는 사실상 최초인 것 같다고 말한다.
서구에서 출현한 잡지(Magazine)의 역사는 대중문화의 출현,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는 출판 분야다. 저자는 잡지는 신문이 등장한 지 몇 십년이 지난 17세기 유럽에서 탄생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 잡지가 세계 최초는 아니고, 그 이전의 것도 존재하지만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후반부터이다. 영국에서는 1704년 다니엘 디포가 "리뷰"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잡지는 산업화와 도시화와 함께 출발했다는 점에서 대중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매체라 할 수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대중사회의 도래를 촉진했다. 잡지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저급한(교양없는) 문화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의 역사적 연원은 거기에 있다.
산업혁명의 자본 축적을 위해 강제(?) 동원된 과거의 농부들은 도시의 하부 구조를 이루는 노동자로 편입되어 살아가게 되었다. 강준만은 대중매체의 기본 원칙은 대중신문이 출현하고 널리 보급된 19세기 말경에 이미 확정되었고, 그 원칙이란 전체 수용자의 수를 보다 더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계층의 사람(대중)에 맞추어 매체의 내용을 꾸며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신문의 출현 얼마 뒤에 출현한 잡지 역시 대중 매체로서 똑같은 역할과 원칙을 지니고 시작되었다. 다른 한 편으로 19세기의 귀족과 지식인들은 부르주아의 출현으로 귀족 문화가 대체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존재와 문화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고, 그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유정미 선생은 "산업혁명은 대중들의 의식을 깨우쳐 놓았고, 교육받은 중산층과 소수 기술 노동자 계층의 출현으로 새로운 형태의 잡지 출현이 가속화되었다"고 말한다. 잡지가 현재의 TV처럼 대중을 교육시켰다는 것은 물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에듀케이션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욕망하는 법을 가르쳤다는 측면이 더욱 강할 것이다. 값싼 주간지들은 대중교육에 영향을 주었고, 대중의 기호에 호응하며 그들의 기호에 맞는 흥미와 재미를 제공했다. 그렇다고 초창기의 잡지들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을 다룬 것은 아니다. 이 시기의 잡지들은 대체로 묵직한 정치와 시사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었고, 현대적인 잡지의 출현은 20세기의 일이었다.
이전의 잡지들과 이후의 잡지들을 구분하는 명확한 구분을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포토저널리즘의 출현을 기점으로 해야 한다. 새로운 사진 기술의 개발은 잡지에서 카툰이나 캐리커처에 의존하는 방식을 밀어내고, 사진이 본문 기사의 연속성을 뒷받침하는 형태가 된다. 활자 중심의 잡지에서 시각 이미지를 강조하는 잡지 스타일은 이때부터 출현하게 된 것이다. 편집자(editor)와 사진가(photographer), 아트 디렉터(art directer) 사이에서 잡지의 편집과 스타일 결정권을 놓고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진 시기도 역시 이 무렵의 일이다. 포토 저널리즘의 대명사격인 "라이프(Life)"가 사진작가 유진 스미스와 라이프 편집자 사이에서 벌어진 불화는 그 쟁투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스미스가「라이프」지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Albert Schwitzer>란 작품 때문이었다. 이유인즉 스미스가 슈바이처 박사를 찍을 때의 의도는 그의 전형적 이미지인 "아프리카의 성자"로 바라보는 슈바이처 박사라는 입장에서 촬영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보통 사람 슈바이처의 관점으로 표현하되 다만 그의 생명경외 정신,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것인데 편집자가 마음대로 사진을 선별하여 트리밍에서 레이아웃까지 고쳐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이었다. 활자에서 이미지로 잡지의 주도권이 넘어가던 시기에 이미지 제공자와 활자 중심의 편집자 사이에서의 충돌을 완화시키고 대중에게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측면에서 아트 디렉터(그래픽 아티스트)들이 요구되었다.
이 책에서 유정미 선생이 개인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내가 사랑한 아트 디렉터"들은 바로 그런 시기에 출현하여 잡지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한 대가(역사적인 측면에서)들이다. 그들은 "하퍼스 바자"의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보그"의 "알렉산더 리버만", "iD"의 "테리 존스", "롤링스톤"의 "프레드 우드워드", "컬러즈"의 "티보 칼만", "더 페이스"의 "네빌 보르디", "레이건"의 "데이비드 카슨" 등이다. 유정미 선생은 이들의 재미난 일화들과 더불어 이들이 속해 있던 잡지, 시대상, 역할 등을 흥미진진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엮어내고 있다. 사실 이 부분만 해도 본전은 뽑는다.
어느 조직이나 영역이든 역할이 겹치는 부분에서는 당연히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편집장(chief editor)과 아트 디렉터(art directer)의 역할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 위에서 언급된 잡지들은 시각 이미지를 주로 다루는 패션 잡지들이므로 당연히 아트 디렉터의 역할(종종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이들도 많다)이 더 커진다. 그러나 잡지란 것이 저와 같은 패션 잡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하지만 사실상 잡지의 본령이라 할 수는 있다) 그래서 뭉뚱그려 다뤄지는 편이다. 대개 잡지의 구분은 어느 영역을 주로 다루는 가에 의해서도 나눠지지만, 매체가 언제 발간되는가에 따라서도 구분된다. 주 단위로 발간되는 주간지 "한겨레21, 시사저널" 같은 매체들, 월 단위로 발간되는 월간지들, 그리고 계절 단위로 발간되는 계간지들, 1년에 두 번 나오는 반연간지, 그리고 1년에 한 번 나오는 연간이 있고, 시시때때로 내는 무크지가 있다. 아마 이 방면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대체로 잘 아는 내용일 것이다.
이 가운데 주간,월간과 계간지는 매체 특성 자체가 다르다. 주간, 월간이 대중적인 잡지라면 계간지는 좀더 특수한, 혹은 전문적인 지식 영역을 다룬다는 점에서 주간이나 월간의 성격과는 일정하게 다르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겐 익숙한 매체는 아닌 셈이다. 주로 문학과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잡지들이 계간지인 경우가 많은 것도 그런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말하는 "잡지는 매거진이다"에서 "매거진"을 잡지가 아닌 연발 사격이 가능한 자동소총의 탄창을 의미하는 것으로 치자면 주간지는 기관총, 월간지는 기관포, 계간지는 대포 격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비유가 좀 잔인하긴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한 건 기관총이었듯, 90년대 초반 주간지의 파워가 거셌었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신문, 주간지 등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트 디렉터의 몫이 일정하게 필요한 잡지는 물론(계간지나 연간지에도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주간지, 월간지들이다. 이 책 역시 그런 잡지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에 타이포그라피와 아트 디렉팅 등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잡지의 미래와 국내 잡지의 역사 등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지식도 넓힐 수 있도록 되어 있다(좋은 도판들도 많이 들어 있고).
저자는 아트 디렉터의 시각에서 잡지를 바라보고 있지만, 내가 처해있는 상황과는 좀 다르기 때문인지 과거의 일화 한 가지가 생각난다. 내가 편집을 처음 배운 것은 잡지가 아니라 광고를 통해서였다. 광고 역시 아트 디렉터의 몫이 작지 않은데, 문제는 그 당시만 하더라도(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아트 디렉터란 개념도 불명확하고, 역할 분담도 모호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트 디렉터와 기획자(AE) 사이의 의견이 불일치할 때다. 광고는 컨셉인데, 기획자가 요구하는 컨셉을 실현시켜주어야 할 아트 디렉터의 디렉팅이 마음에 안 들때, 광고 시안은 두번이고, 세번이고 반복된다. 하지만 시안이란 것도 좋은 것이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광고주(클라이언트)들은 컨펌(confirm)하는데는 끝도 없이 늘어지면서도 이쪽은 최대한 쪼는 것이 장땡인 줄 알기 때문에 마감은 늘 임박해있다.
며칠씩 밤새우며 컨셉 짜 주었는데, 그걸 이미지화 해주어야 하는 아트 디렉터가 전혀 낯선 이야기를 들고 올 때는 환장하는 거다.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고, 게다가 활자쪽 아해들 눈에 이미지 다루는 인간들은 뭔가 괜히 멋이나 부리는 족속(의상부터가 다르다니깐)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서로 다른 세계의 인간들인 거다. 즉, 활자 다루는 인간들은 글자부터 보이는데, 이미지 다루는 사람들은 글자도 하나의 그림 내지는 라인, 면으로 먼저 보인다. 그래서 광고 카피가 좀 길다 싶으면 그 내용은 안중에 전혀 없고, 잡아 늘려달라, 줄여달라하고... AE는 카피라이터와 아트 디렉터 사이에 끼어 죽을 지경이 된다. 하여간 그렇게 마감 임박해서 아트 디렉터와 싸우고, 또 싸우고 해서 결정된 시안을 이제 막 완성하려는데 맥킨토시가 나가 버렸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의 맥킨토시는 시스템이 상당히 불안정해서 이런 일들이 종종 빚어지곤 했다.
절망한 우리들은 모두가 퇴근한 빌딩에서, 디자이너 친구들이 취미로 가지고 놀던 BB탄 소총을 가지고, 서로 죽지 않을 만큼 BB탄을 쏴대며 다이하드 게임을 했다. 아마, 서로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건 아니었을까 . 너무 고생스러웠기에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긴 하지만 그래도 간혹 그 시절이 그립다... 그때 일러스트 하나만 달라고 그렇게 떼 써도 안 주던 일러스트레이터 겸 디자이너 형과 포토그래퍼, 그리고 함께 일했던 친구들... 그리고 지금은 방송작가가 된 웬수 같은 선배.... 그땐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는데, 지금은 여전히 그 일은 싫어도 그들이 지금도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