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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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답답해...

 

 

이 책은 좀 읽다보면 마음이 참 갑갑합니다.

주인공들의 처지가 참 그렇습니다. 안팎으로의

상황이 참 갑갑하기 그지 없거든요. 뭔가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차가운 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집안의 이야기를 소설은 보여줍니다. 도서

및 문구회사의 총관리처에서 교정작업을 맡고

있는 남자는 은행에 다니는 부인과 다투고

부인은 집을 나갑니다. 일단 이 집의 가장 큰

문제는 고부갈등인데요, 남자의 어머니는 부인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습니다.

사립학교를 다니는 아들과, 어수선한 정국에

크게 오른 물가 때문에 경제적 사정은 나빠지고

금전적 문제에 시달리구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자는 폐병에 걸리나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합니다.

부인의 상사인 주임은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며

일본군이 피해 피난을 가자고 설득하고, 부인은

남편을 두고 떠나는 것에 매우 고심합니다.

부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본 남편은

부인이 자신의 곁을 떠날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게

되고, 건강도 급속도로 나빠집니다. 고부간의

갈등과 다툼도 절정으로 치닫게 되지만, 여리고

순종적이며 큰소리를 내거나 남에게 상처주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의 성격은 이 상황의 그 어느

문제도 해결해 내기가 힘듭니다. 결국 남편과

부인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차가운 밤

작가
바진
출판
시공사
발매
201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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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

 

 

이야기가 참 물 흐르듯 주욱 이어집니다. 톡톡

튀는 곳이나 모난 곳 없이 유려하게 흐르는

이야기의 전개가 기억에 남네요. 그런데 좀더

생각해 보면 이야기만 계속 진행되고 몇가지

사건만 일어났을 뿐이지 주인공의 상황이나

문제들은 변한게 하나도 없습니다. 남편의

상황이 나이진 것도 아니고, 금전적 문제가

해소된 것도 아니며, 고부갈등이 풀린 것도

아니고, 부부 사이의 앙금이 풀린 것도 아니다

보니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참 답답해 미칠

노릇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지! 하고

옆에서 코치라도 해 주면 좋겠으나, 뭐 이런

문제가 옆에서 가르쳐 준다고 해결된 문제던가요?

 

 

 

 

문제있는 주인공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남편, 부인, 남편의 어머니

이렇게 세 명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한 명씩

살펴 보죠. 남편의 문제는 싫은 내색하기를 꺼리고

심약한 성격이 문제예요. 남편의 어머니는 전통과

관습에 매여 과거를 고집하는 그런 인물이구요

부인은 이 두사람보다는 쪼금 더 낫긴한데 착한게

탈이랄까요. 어쨌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에게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뭔가

세 사람 모두 참 딱하고 안타깝습니다. 조금만

노력하고 변화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던가요?

 

 

 

작가가 말하는 문제의식

 

 

작가가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을

책을 읽다보면 생각보다는 비교적 쉽게 느낄 수

있어요. 여기서 잠깐 작가의 말을 한번 볼게요

 

'그들 모든 행동은 본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곧 붕괴할 구사회, 구제도, 구세력이 뒤에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다. 그들은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희생자가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세 명의

주인공을 모두 동정하지만, 그러나 또한 그들

모두를 비판한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매, 작가가 묻고 싶었던 것은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라는 점이었을

겁니다. 맹목적으로 어머니에게 순종적인 아들, 

전통적인 아내와 며느리의 상을 강요하는

시어머니, 전통 사회의 가치관과 윤리 앞에서

고민하다 자신의 진정한 삶과 행복을 잃은

부인까지, 그들을 지금 이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봉건적인 사회와 사상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것들에 의해 개인과 가정이 망가지고

있는데도 이런 문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들일

겁니다.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소설 속의 '곧 붕괴할 구사회, 구제도,

구세력'은 그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풍문으로만 전해지는 전쟁 소식,

직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시선, 무언의 압박,

어둠, 길거리 노점상의 대화, 안개낀 밤처럼

그 실체가 보이지 않거나 모습을 은밀하게

감춘 것들을 통해 소설은 주인공을 압박하고

조종하는 무언가를 그려냅니다. 보이지는 않아도

느낄 수는 있습니다. 우리를 잡고 꼭두각시처럼

흔드는 구태의 것들은 우리의 주위에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

길거리의 사람들이 나누는 말들 중 한 구절에

이 보이지 않는 힘과 개인의 관계를 압축하면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승리는 그들의 승리이지, 우리의 승리인가."

 

 

 

 

2013년 현재, 좀 나아졌나요?

 

 

이 소설이 쓰여진게 1940년대 인데 한 70년이

지난 지금은 뭐 좀 달라진게 있나 둘러보면

그닥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시대는 최첨단의

초현대를 달리고 있는데,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근대, 이보다도 더한 전근대도 벗어나지

못한 것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구태한 정치판만 보아도 과거와 달라진게 없죠.

역사와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깊이 뿌리박혀 판을 치고 있는 관습과 의식들도

아직 많습니다. 중국만 그런 것도 아니고 한국도

마찬가지죠. 구시대의 유물들이 현재의 나와 우리를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 어떤 독이 되고 있는지,

잘 살펴보는 기회 한번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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