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노상
앤드류 밀러 지음, 야나 마키에이라 옮김 / 문학세계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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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역사소설인가 

 

아니, 이게 왜 역사소설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스토리

만 봐서는 전혀 역사스럽지 않은데, 모

신문이 뽑은 '최고의 역사소설 10편'에 

선정되었다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

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그 뿐만이

아니죠. 그냥 묘지 옮기다가 생긴 사건들

을 소재로 한 소설인 듯 한데 심지어 

문학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이건 또 

뭔가요? 그저 프랑스 혁명 전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점 때문에

역사소설로 분류되는 건가요?

 

 

 

혁명의 '혁' 자도 없는데

 

왠지 수양대군과 단종 나오고, 한명회가

살생부 쓰고, 악랄함의 대명사 장희빈

뭐 이런거 나오고, 최수종 아저씨가

말타고 나와서 신라부터 고려, 조선까지

나라를 세워야 역사 드라마이고, 역사

소설일 듯 하지 않나요. 한국에서의

역사적인 사건을 작품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들이 있듯이 프랑스에서 잘 쓰이는

소재는 단연 프랑스 혁명일 겁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었죠. 시시콜콜

말하지 않아도 세계사를 놓고 보아도

큰 사건이었다는 것 쯤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 소설의 이면

에는 프랑스 혁명이 숨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프랑스 혁명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혁명에 '혁'자도 나오지

않는 이 책은 보기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도

무서운 소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상소설? 그건 먹는건가요?

 

어느 책 서평이나 책 소개글을 참고하자면

이 책은 역사소설 보다는'사상 소설'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정말로

사상 소설이라면 책을 읽어내는게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도 있을거란

걱정이 밀려옵니다.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오신 분들께 너무 겁부터 준건가요? 하하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심오한만큼

좋은 책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레지노상

작가
앤드류 밀러
출판
문학세계사
발매
201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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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노상 Les Innocents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건축을

공부한 엔지니어인 주인공은 파리 중심에

위치한 레지노상 공동묘지를 철거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이 공동묘지를 철거하는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해골들이 엄청나게 많이 쌓여 있는

이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러운 일이며 이 무시무시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 인부들은 거의

패닉 상태가 됩니다. 열악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인부들을달래가며 계속해서

작업을 진행해 나갑니다만, 공사를

진행하던 중 몇가지 사건들이 발생

합니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인부가

부상당하고 유골의 날카로운 뼈에

찔려 독이 올라 사경을 헤매죠. 어떤

인부는 아예 도망가 버리기도 합니다.

도시 여기저기에 반란이나 혁명과 묘지

공사를 연관시킨 낙서가 돌아다니구요.

주인공은 하숙집에서 묘지 철거에 반대

하는 하숙집 딸에게 자는 중 머리를

가격당해 사경을 헤매기도 합니다.

인부들은 매춘부를 불러 공사장인

공동묘지를 한순간 음탕한 공간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죠.

주인공의 동료였던 인부대장이 공사를

도와주던 묘지 교회지기의 딸을 강간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묘지의 교회

철거작업에서 생긴 사고로 인부가 죽은

후 인부의 시신을 태우는 의식과 함께

교회가 타면서 묘지에 화재가 발생합니다.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주인공은

공사를 계속 진행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책임자로서의 자리를 사임하려고

하나 반려당하고 결국 공사를 마무리

합니다만 공사가 끝난 후 그 어떤 활력같은

것이 죽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가오는 혁명의 그림자

 

이 책의 작가 앤드류 밀러는 1786년

레지노상 공동묘지가 이전된 것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얼마

전이었다는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글을 썼다고 말합니다. 우선 짚고

넘어 가야할 것중 하나는 소설 이곳

저곳에서 보이는 혁명에 대한 암시일

겁니다. 낡고 완전히 썩은 교회건물을

철거하면서 지붕에 구멍을 내자 은총

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빛,

묘지를 파내자 뒤엎어진 땅에서 새로이

자라는 꽃과 풀들, 무엇보다도 악취를

풍기며 시체가 썩어가는 공동묘지를

파 내고 도시를 정화시키는 작업이야

말로 혁명의 상징이자 예고일 겁니다.

 

 

 

'자신의 이성 이외에 그 무엇도 섬기지

않는 자유인에게만 태양이 비치는

시대가 오리라'

 - 니콜라 드 콩도세르 후작

프랑스 계몽주의로부터 시작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와 존중은

혁명의 사상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성을 억압해 온 많은 특권과

실정법에 대한 이성의 투쟁이 바로

혁명이었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그러한

혁명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유로운

인간의 정신', '완전한 이성' 혹은 '순수

이성'이겠지요. 묘지의 철거를 통해

파리를 정화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신념를 가진 주인공의 모습에 자유로운

이성을 찾고자하는 혁명의 모습과 

겹쳐보면, 소설에서 주인공이 찾고자

하는'순수'는 바로 이 '순수 이성'이지

않았을까요.

 

 

 

'순수'는 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혁명

과도 같은 이 공동묘지 공사에 임하는

일꾼들은 그리 이성적으로 보이진

않는게 함정입니다. 해골들이 가득한

이 공사장이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광기와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보이는 인부들의 모습을

작가는 적나라하게 그려냅니다. 비단

인부들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신부는 이미 미치광이가 되어 있구요.

몇글자의 낙서가 도시의 사람들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삶에서 익숙한 공간이었던

공동묘지의 철거를 견디지 못하고

공사 책임자인 주인공을 공격합니다.

인간의 자유로운 이성에 역행하는

인습과 전통, 관습과도 같은 공동묘지

의 철거에 반대하는 것은 이성적인

관점에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우리의 엔지니어

주인공 마저도 순수하고 완전한 이성의

소유자는 아닙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찾는 '순수'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주의깊게

귀를 기울여 봐야 합니다.

 

 

나약하고도 나약한 존재

 

생각보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하며 굳건한 신념과 의지를 가진

존재들이 아닙니다. 해골더미와 어둠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비이성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불안한 이성과

미약한 신념 그리고 선천적인 나약함을

지는 존재들이 벌이는 혁명은 성공할

수 있는건가요? 이미 혁명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미래를 살고 있는 우리는

분명히 혁명은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돌아 봅시다. 혁명은 성공적이었던가요? 

순수한 이성을 향해 혁명은 이상적인

방향으로 수행되었던가요? 그래서 우리는

자유로운 이성의 세계를 얻었나요? 순수

하지 않은 존재들이 순수를 찾는것은

자가당착의 모순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피를 뿌리면서 이성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흘러가던 혁명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역사 속에서 다시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이렇게 이 소설은 혁명의 전과 가운데, 

종결과 그 이후까지 아우르는 혁명에

관한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역사

소설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실존와

이성, 사상과 철학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상 소설이기도 한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소설 속에서는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교차합니다. 그러면서 작가는

여기저기서 우리의 의식 속에 숨은

비이성의 문제를 계속해서 끄집어 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을 자르면서 공포의

아이콘이었던 단두대 - 기요틴 박사가

이 소설에서는 그나마 가장 성실하고

순수하며 이성적인 인물로 보입니다.

물론, 칼날을 내리면 목을 치는 항상

일정하면서 일관성있게 반응하는 단두대

야말로 그 존재 자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완전하게 이성적인 존재일

겁니다만 동시에 많은 이들을 패닉과

공포에 빠뜨렸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분명 작가의 의도적인 비유겠지요.

역시 문제는 기요틴에 있는 게 아닙니다.

기요틴을 보는 우리가 문제인 겁니다.

강간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부대장의 '한때는 내 속에도 선한

마음이 있었다' 는 말은 참 의미심장합니다. 

죽기 전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자신의

비순수, 비이성을 고백하고, 그런

자신에 관한 문제를 머리에 총을 

쏘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공동묘지라는 부패한 공간을

치우기 위해 불러온 일꾼들이

다시 그 곳을 어지럽힙니다.

시신들을 완전히 파내고 정화

되어야 할 공간에 또 새로운

시신이 몰래 묻힙니다. 공사가

끝나고 보고서를 제출하고 궁에서

나오면서 주인공이 본 죽은

코끼리, 아프리카인이었던

성 오귀스틴께서 어쩌면 본 적

있을 지도 모를 그 코끼리를

들어올리기 위해 일꾼들을

닥달하는 관리와 패닉에 빠진

일꾼들을 보면서 공감과 연민 

을 느끼는 주인공을 보면서

우리는 이 불행한 일들이 어디선가

또 반복될거라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어요. 어쩌면 그것은

불완전하고 무력한 존재의

숙명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로다

 

철학과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은게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던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조금더 인문학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었다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의를 명확하게 깨닫고 더

심도있는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안타깝습니다.

그만큼 무지와 얕은 지식에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책 자체는 정말 대단히 좋다고

생각힙니다. 역사와 철학과 사상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거대한 메타포

에 실어 보내면서도 효과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가 가진 엄청난 내공, 사유의

깊이와 글쓰기 재주에 대한 반증일

겁니다. 오랫동안 곁에두고 보면서

계속해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책, 이런 책이 '양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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