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와 연인
김영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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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스너와 폴록

- 연인 간의 사랑이 창조적 생산성의 채널 속으로 피드백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보다도 인정이다

나는 근기는 물론이거니와 재기마저도 갉아먹는 사랑의 열정을 수없이 목격했다.
인정 투쟁을 악용하면서 허영과 탐욕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랑은 또 얼마나 흔한가?
그러나 생산적 상호 인정은 연인간의 사랑이 창조적 열정과 호혜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토대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욕망만도, 애착만도, 제도만도 아닌 사랑의 관계를 이루기 위한초석이며,
연인이 동무와 겹치면서 이드거니 함께 걷도록 돕는 길이기도 하다.
하버마스-호네트 식으로 말하자면,인정망각은 연인을 물화시키는 짓이며,
사랑이라는 무시무시한 맹목의 동력을 상호 인정의 호혜적 의사소통의 관계로 승화시키는 길만이
연정의 생산성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크레이너스와 폴록의 애정이 둘 사이의 예술적 창의성이나
생산성과 호혜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은 상호인정이라는 제3의 매개일 것이다.

마치 감성과 오성을 매개하는 상상력처럼, 인정은 사랑과 생산성을 매개한다.
그리고 인정과 실천적 공감이 없는 애정이 짧은 애착으로 빠지거나 변질되고 마는 것을 우리는 쓸쓸하게 목도한다.
-113-114쪽

피카소의 천재적 에고이즘


<나의 할아버지 피카소 - 마리나 피카소>에서


" 그가 여자들을 좋아한 것은 그들이 그에게 불러일으키는 동물적 성충동 때문이었다.
여자들은 자신들의 신비를 토해내야만 했다.
신선한 육체를 좋아하는 그는 그들을 서둘러 죽였고, 강간했으며, 영양분으로 섭취했다.
피와 정액으로 범벅이 된 그들을 자신의 화폭에 열정적으로 되살렸으며,
그들에게 자신의 폭력을 받아들이기를 강요했고,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성적인 힘이 무뎌졌을 때는 가차없이 그들에게 죽음을 선고했다.
그가 섹스와 그림에서 끌어내는 관능은 본질이 동일했다."


에바구엘은 31세로 요절했고, 올가 코홀로바는 그의 애정을 잃은 뒤 정신이상을 일으켰으면 반신불수로 삶을 끝낸다. 마리 테레즈도 그에게 버림받은 뒤 그의 죽음과 함께 목을 맨다. 도라 마르도 그와의 이별을 삭이지 못한 채 정신병원을 들락거렸고, 자클린 로크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마리나 피카소는 오빠 파블리토의 자살,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이자 피카소의 장남인 파울로의 자살을 모두 할아버지 피카소의 탓으로 돌린다. 피카소를 정점으로 그녀의 가족사를 뒤덮은 먹구름 속으로부터 힘겹게 빠져나와 사회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ㄴ느 그녀는 절규한다.


"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절망에 빠트릴 권리가 위대한 예술가들에게는 있는가? 그들의 작품이 제아무리 찬란할 지언정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가? 나의 가족은 저 천재가 쳐 놓은 덫에서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 하나한를 완성해가는데 타인의 피를 필요로 했다."

-184-185쪽

매창과 유희경


- 사랑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가령 이별이나 둘 사이를 가르는 거리의 문제이다.


노스텔지어(향수)의 문제를 인문지리적, 계보학적, 혹은 매체론적으로 분석할 수 있듯이, 상사병의 기원이나 매커니즘도 조금 다르게 헤아리고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향수병이나 상사병은 지리적 거리가 인간관계를 결정적으로 규정했던 과거의 유산으로 이제는 급속히 소멸하고 있다. 전방위적인 원격통신이 현실화 된 지구촌에서 매체적 변덕이 기승을 부려 지역이나 사람중심의 애착이 발을 붙일 현실적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요컨대 노스텔지어가 결국 마음자리를 통해서 해결-치료되는게 아니었듯이, 연인사이의 원격감응방식 -마치 주술처럼- 인 상사병도 각자의 마음자리를 톺고 까부른다고 해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198-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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