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쥐똥나무)의 '자신만의 하늘을 가져라'는 '나무에게 배우는 자존감의 지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어쩌면 자존감이란 단어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펼칠 수 있게 만든걸지도 모른다. 샘터에서 출간한 아우름 시리즈 13편인 이 책은 그렇게 나와 만났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만나는 여는 글에서 작가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건넨다. 농촌에서 자란 이야기,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부모와 형제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분노.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누구나 한 번쯤, 아니 지금까지도 갖고 있을 고민들에 대해 자신도 했노라, 고백한다. 그리고 말한다. 나무를 통해 자존을 회복할 수 있었다라는 말을. 과연 나무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계속해서 읽어내려갔다.
길지 않은 내용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지금 이 순간 이 책을 만났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무를 통해 내가 갖고 있던 고민과 걱정들을 조금은 날릴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도 나만의 나무 이름을 갖고 싶어졌고 우리 아파트에 있는 나무의 수를 세고 싶었으며 꽃이 다 떨어진 뒤의 풍경을 보며 황홀함을 느끼고 싶었다. 깊어가는 가을의 길목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나무를 보러 밖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거울 속 내 키는 그대로지만 내 마음 속 하염없이 작다 생각했던 내 모습은 조금씩 싹을 틔울 것만 같았다.
"나무가 어릴 때와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줄기의 색깔을 바꾸는 것은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무가 자신의 색깔을 찾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리듯이, 사람도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중략) 인생은 곧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자신만의 색깔을 빨리 찾는 것보다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조급함이 늘 있었다. 아니라고 생각해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조급함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나의 자존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는 내 색을 아직 찾지 못했음을 불안해했고 색을 찾은 이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임을 다시금 나무의 색깔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나의 모든 삶의 과정들이 나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음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게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기억해야한다.
"나무를 공부하면서 주변에서 '외도'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역사학자가 나무를 공부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외도로 보였던 것이죠. (중략) 태어나면서 전공을 선택한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사학자의 나무에 대한 관심은 나무의 가지처럼 자기 능력을 다양하게 펼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무는 가지를 뻗어야 살 수 있습니다. 나무는 가지를 뻗음으로써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마음껏 펼칩니다."
몇 차례의 면접을 준비하고 또 보면서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질문은 전공과의 연계성이다. 만약 면접장이 아니라 시끄럽거나 혹은 조용한 술집이었다면 나는 구구절절 나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 그러나 1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 이야기를 함축하기란 어려웠다. 그리고 매번 난 죄인이 된 사람처럼 방향을 돌린 것에 대해 자질구레한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다. 나의 스무살은 연기를 전공했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고 살면서 그 이유는 조금씩 흐려졌다. 나에겐 다양한 가능성이 있었고 나는 그 가능성을 시험하며 살아온 것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가지를 쭉쭉 뻗다보니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나는 모두 내 잘못인 줄 알았다. 내가 나약해서,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내가 신중하지 못해서 내린 결정들 때문에 모든 게 내 탓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의 모든 선택들은 최선이었고 그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잡고 싶었던 것들을 내려 놓을 때 느꼈던 마음가짐, 나는 패배자고 포기하는 비겁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새로운 가지를 뻗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무의 가지를 보며 난 나를 인정하게 됐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당당하게 나의 지난 날에 대해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정해진 길이란 없었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길이란 누군가가 걸으면서 만들었을 뿐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길을 만들기보다 남이 만든 길을 따라 걷길 바랍니다. 그게 편하니까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만든 길은 언젠가 막히는 법입니다. (중략) 암자에 앉아 아무리 생각해도 길이 보이지 않아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막막했으니까요. 가만히 비를 맞으며 나무를 바라보는데, 나무는 그저 비를 맞고 있을 뿐이더라고요. 비를 피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바람도 피하지 않았죠. 나는 그동안 조금 힘들다고 생각하면 일단 피했거든요. 계속 피하다 보니 나중에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피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비를 맞고 앉아 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어요. 불안하지 않았죠. 오로지 내가 걷는 길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비에 젖은 나 자신이 결코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리고 남이 만든 길을 따라가다 더 이상 갈 곳이 막혔을 때엔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알면서도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것, 불안한 마음에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누가 지나가길, 누군가 나를 도와주길 바라던 불안한 모습은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비는 언젠가 그친다. 나무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비가 와도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앞으로 나의 삶을 살아가는데 훨씬 커다란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저자가 쓴 시의 일부를 소개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