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 - 어느 심리학자의 물렁한 삶에 찾아온 작고 따스하고 산뜻한 골칫거리
닐스 우덴베리 지음, 신견식 옮김 / 샘터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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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길가에 산책 나온 강아지를 보면 나도 모르게 '애기야!'라고 부르며 달려가 만져보고 싶어했다. 지금까지 주욱 아파트에 거주하고 낮 시간에는 아무도 없는 탓에 강아지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무언가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건 엄청난 책임감을 수반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쉽사리 동반자로서 동물을 집안에 들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요새 친구들 SNS를 보면 강아지 못지않게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고양이 특유의 도도함과 개인주의적 성향은 우리집처럼 늘 집을 비우는 사람들에게도 잘 어울린다고 했다. 아무래도 강아지보다 고양이는 혼자서 잘 지내니 말이다.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는 어느 노 심리학자의 삶에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인 닐슨 우덴베리는 스웨덴의 신경의학과 교수이다. 심리학자이며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한 작가이기도 한데 2003년에는 스웨덴 최고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스웨덴에 출간된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는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출판된 에세이다. 때문에 가볍게 읽기 좋으며서도 삶의 지혜와 문득 잊고 있었던 감정들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어느 날 박사의 집 앞 마당에 나타난 고양이 '나비'는 심리학자의 삶 속에 조금씩 비집고 들어와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나는 내 거라고 외치는 피트 헤인의 시처럼 고양이는 자꾸만 내가 나 아닌 고양이의 집사됨을 자청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3킬로도 안 나가는 이렇게 작은 생명이 어떻게 내게 이런 안정감을 불어넣는 걸까? 나는 나비보다 훨씬 더 힘이 세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손쉽게 이 녀석을 망가뜨릴 수 있다. 나비는 나를 능가할 그런 힘이 없다. 나비가 내게 보이는 신뢰가 그렇게 중요한 걸까? 내가 보여준 자비심과 호감을 나비는 고맙게 받아들인다. 똑같이 무력한 아기들도 부모에게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71페이지)

생각지도 않게 만난 고양이 나비는 작가의 삶 속에 큰 안정감을 준다. 나비가 없었던 날들을 떠올리기 어려울만큼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는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혼자서도 잘 놀던 나비가 작가에게 다가와 몸을 부비고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낼 때마다 작가는 웃음짓는다. 


잘 생각해보면 어쩌면 우리는 둘 다 서로 꽤나 동등한 입장에서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둘 다 각자 성향의 포로이며 바로 이러한 이유로 관계라는 형태를 만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85페이지)

동물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또 하나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꼭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람들과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 깊숙한 곳에 함께하는 동물들 역시 살아있는 생명체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있음에 의지가 되고 때로는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를 위해 그는 나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에 일정 부분 위로를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우리를 골랐지 우리가 고른 게 아니다. 고양이들은 수천 년 동안 그랬기 때문에 꼬리를 자랑스레 치켜들만하다. 이들은 계급을 부여받기 거부하는 자립적인 개인주의자들이다. 많은 사람이 꿈꾸는 바로 그런 주체적인 모습이다. (168페이지)

아마도 고양이의 이런 모습이 가장 매력적인 고양이의 모습이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신경을 참 많이 쓴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한다. 혹시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수없이 많은 쓸데없는 고민들로 시간을 낭비한다. 그러나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안기고 싶을때 와서 안기고 귀찮을 때엔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공간에 들어가 숨어버린다. 


내 고양이는 아무 거리낌도 없는 향락주의자라서 가장 좋은 것만 받아먹는 데 한 점의 부끄러움도 못 느끼는 쾌락 완전체다. 내가 보기에는 매력적인 성격이다. (중략) 나는 그런 삶의 태도를 존중한다. 나비는 이왕이면 나은 것을 망설임 없이 고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딱히 더 나은 게 없다면 꽤 비참한 상황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런저런 시련을 어떻게 견디는지는 녀석에게 배울 수 있겠다 싶다. 그게 바로 내가 갖출 덕목이다. (181페이지)

나 또한 고양이를 통해 배우고 싶은 점이다. 결국 내 인생은 나의 행복을 위해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많은 부분을 남의 행복을 위해, 남의 이목을 위해 할애한다. 그러던 중에서 잃어버린 나를 되찾고 싶다 말한다. 이건 모순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선 때로 나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나비를 통해 이런 점을 배운다.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 제목처럼 우리는 고양이 기분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훌륭한 삶의 동반자 역할을 해낸다. 항상 놀아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항상 무심한 것도 아니다.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가 가르쳐준 많은 의미가 책을 통해 읽는 나에게도 충분히 유효했다. 나도 언젠가 내 마음을 다 줄 동물친구가 생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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