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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지 못한 숲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민음사에서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갈 신예들을 엄선해 야심차게 준비한 민음 경장편 시리즈가
오늘의 젊은작가 시리즈로 새롭게 론칭되었다.
그 첫번째 주인공은 천사들의 도시등을 통해 주목받고 있는 조해진 작가다.
그녀의 책을 처음 접해 본 나로써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은 은근한 중독성을 내뿜는
그녀만의 짧고 간결한 문체때문인지 읽는 동안 굉장히 매력적인 책으로 다가왔다.
표지 또한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이라는 제목에 맞게 파스텔 색감으로 신비로움을 뽐내고 있어
그 디자인 자체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은 누나와 남동생의 이야기를 다룬 가족소설이자,
슬픈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기도 하다.
남동생과 누나는 서로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을 지나가지만, 서로가 동행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여섯살이던 남동생 현수는 k시 기차역 가스폭발사고 때 사채업자의 빚에 쪼들리던 엄마에 의해 사망자로 위장 신고된다.
그때 받은 보상금과 아들을 조폭에게 팔아 넘긴 엄마.
현수는 가족들을 원망하며 신원이 말소된 상태로 12년 동안이나 살아왔다.
마치 죄인이 된 것마냥 편의점에서 물건 하나를 살때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카드의 승인이 제대로 되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만 하는 조금은 위험한 삶을 살고 있는 현수다.
열여덟살의 현수는 서류를 위조하는 브로커로 키워졌고,
원룸에 혼자 사는 누나 미수에게 티나지 않게 필요한 물건들을 채워주고, 자신의 존재를 숨긴채 드나들기 시작한다.
동생이 죽은 줄로만 아는 미수는 현수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 살아간다.
존재감 없는 빌딩 로비의 안내원으로 일하는 미수는 자신의 힘든 인생과 꼭 닮아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 윤이 있다.
같은 빌딩에서 보안 요원으로 근무하는 윤은 꽤 괜찮은 4년재 대학을 나왔지만 자신이 꿈꿨던 신분상승을 하지 못했고,
그저 존재감 없는, 아무도 터치하지 않는 건물속의 고요한 인물인 보안요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일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워 자학하면서 지낸다.
이유없이 미수에게 화내는 일도 많아지고 하나 둘 아물지 않는 상처는 결국 이별을 가져왔다.
5개월간의 짧은 사랑을 끝으로 그들은 아픈 이별을 한다. 그럴때 미수에게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할머니다.
"내가 왜 자신을 피하는지 미수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다만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가까운 사람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던 패배자의 진짜 얼굴을 그녀는 보았고 알아 버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알게 된 동생 현수에 대한 진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동생 현수의 이야기를 알게 된 후 미수는 현수를 찾기위해 온힘을 기울인다.
결국 현수는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는데...
늘 곁에서 동행하고 있었던 남동생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미수,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자신을 몰래 훔쳐보던 소년이 자신의 동생이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도시 한가운데 미수에게만 나타났던 숲은 잠시나마 현실에서의 고통과 허기를 달래준다.
"세상의 모든 시계가 작동을 멈추면서 눈앞의 풍경은 정지 상태가 되고 소리는 증발한다"
미수와 현수, 윤 모두 가슴 한구석 상처를 안고사는 사람들이다.
작디작은 그녀의 생활공간인 미수의 원룸과 윤의 옥탑방,
그리고 누나를 찾아 몰래 같은 건물에 입주한 남동생의 원룸엔 이들 각자의 고통과 외로움이 배어 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은 현수와 미수의 재회를 통해 우리에게 찡한 감동과 가족간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곧 숲의 입구가 나왔다. 숲에선 햇빛이 부챗살처럼 부드럽게 갈라져 키 큰 관목 사이로 스며들었고,
바람 끝엔 물에 젖은 풀꽃 향기가 희미하게 실려 있었다.
백색 사슴과 외뿔 말들이 발소리도 조심해하며 고요하게 소년을 따라왔다.
새들의 지저귐이 한 번씩 들려올 때면 소년은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나무 위 어딘가를 올려다보곤 했다.
드디어 호수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