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대도둑과 세기의 탈주극
솔레다드 로메로 지음, 훌리오 안토니오 블라스코 그림, 문성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천장이 납으로 된 감옥을 뚫고 나가고, 비행기에서 돈가방을 들고 밤하늘로 뛰어내리며, 심지어 자기 몸을 상자에 넣어 택배로 부친다. 지어낸 소설이라 해도 믿기 힘든 이 기막힌 장면들은 놀랍게도 모두 실화다. 이번에 접한 『전설의 대도둑과 세기의 탈주극』은 단순히 '누가 무엇을 훔쳤다'는 식의 가십을 넘어, 인간의 절박함과 대담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묘한 기록물이다.

책은 올 컬러 일러스트가 화려하게 펼쳐져 시선을 붙잡는다. 신문을 보는 듯한 독특한 구성은 사건의 긴박함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흐름에 몰입하게 만든다. 읽다 보면 범죄자들의 주도면밀함에 놀라다가도, 그 뛰어난 역량을 왜 하필 범죄에만 쏟았을까 하는 씁쓸함이 남는다. 탈옥을 위해 동원한 그 집요함과 실행력을 정당한 삶의 방식에 쏟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한 역량을 오직 법망을 피하는 데만 소모한 그들의 비뚤어진 집념이 못내 씁쓸하다.

하지만 그 집념이 응원으로 바뀌는 대목도 있다. 1849년 흑인 노예 헨리 브라운의 이야기가 그렇다. 상냥한 주인 밑에서 착실하게 일하며 가정을 꾸렸던 헨리는 어느 날 갑자기 임신 중인 아내와 아이들이 다른 주인에게 팔려 가는 비극을 맞이한다. 아내를 팔지 말아달라고 미리 돈까지 지불했음에도 주인은 그 간절함을 무시하고 배신을 택했다. 가족을 물건 취급하며 갈라놓는 노예제도가 얼마나 잔인한지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결국 헨리는 자신을 상자에 넣어 노예제도가 없는 주로 택배를 보내는 대담한 계획을 실행한다. 27시간 동안 상자 속에서 거꾸로 뒤집히는 가혹한 여정을 견디고 살아남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고 첫인사를 건네며 상자 밖으로 나온 장면에선 그의 성공에 기립 박수라도 보내고 싶었다.

동독의 두 가족이 수제 열기구를 만들어 자유의 땅으로 날아간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이웃과 친척조차 믿을 수 없는 살벌한 감시 속에서 몰래 1,000㎡가 넘는 천을 바느질하고 역학 공부까지 해가며 기구를 띄운 것은 순전히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영하 10도의 밤하늘을 날아 서독에 무사히 착륙했을 때, 동독제가 아닌 트랙터를 보고 환호했을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이념이나 정치를 떠나 가족과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목숨을 건 그들의 용기에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고 성공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카사노바의 실체는 의외였다. 세기의 바람둥이라는 화려한 이름표 뒤에는 결국 남을 속이며 산 사기꾼이자 범죄자의 모습이 있었다. 금서 소지와 마술을 빙자한 죄로 갇혔다가 천장을 뚫고 탈옥한 일화는 특이하지만, 그를 너무 오랫동안 과대평가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1971년 비행기에서 돈가방을 들고 사라진 D.B. 쿠퍼 사건 또한 보잉 727기의 특성을 완벽히 파악한 치밀함과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대담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미제로 끝났다니. 과연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은 세련된 일러스트와 함께 실화의 단면들을 수집하는 즐거움이 있다. 범죄자들의 재능 낭비에 씁쓸해하다가도, 절박한 이들의 생존극에는 절로 마음이 쓰인다. 결국 이 책은 단순한 사건 기록을 넘어,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준다. 똑같은 집요함과 실행력이라도 어느 방향을 향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탈옥수가 되고 누군가는 자유를 얻는다. 그 한 끗 차이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