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 희극성의 의미에 관하여 문지 스펙트럼
앙리 베르그송 지음, 정연복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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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웃음 – 희극성의 의미에 관하여, 앙리 베르그송 서평



 모든 것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철학의 본질이다. 

플라톤의 화법만 떠올려보더라도 그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철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단순하지만 놀라운 탄복에서부터였다. 

‘어떻게 이런 것에 의문을 가질 수 있지?’라는 경탄에서 순식간에 ‘왜 나는 이런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지?’라는 참회로 이어지는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이 철학이었다. 

 

 많은 철학자들의 철학을 접하다 보면 다양한 물음표를 시작으로 그들의 주장이 펼쳐진다. 가치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철학 또한 굉장히 견고한 주관적 논리로부터 전개되는데, 결국엔 그 주장을 통해 우리에게 스스로 삶에 대한 질문을 하게끔 만든다. 

내가 계속 철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삶에 대한 경이감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세상에 대해 놀라워하는 능력을 잃게 되면 금시에 본질적인 것도 상실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서 접하게 된 이번 책은 정말 흔하지 않은 물음표로부터 시작되는 책이다. 


 프랑스의 관념론 철학자인 앙리 베르그송은 웃음에 관해 3개의 논문을 썼고 그것이 이 책에 실려있다. 책머리부터 매우 흥미로웠는데, 그는 그가 이 책의 내용에 아무런 수정도 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언급하며 웃음에 관한 여러 가지 후속 연구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결과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앙리 베르그송은 희극성이 만들어지는 기법을 명확한 방법으로 설명하려 하고, 그가 연구한 방법이 학문적 정확성과 엄정함을 지니는 유일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책의 머리말을 마무리했다. 


 ‘희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보통인 이하의 악인을 모방’한 것으로 정의한 이래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철학적, 미학적 시도들은 꾸준히 지속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그것을 연구했다.


 웃음에 관한 주요 두 이론으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우월 이론과 칸트, 프로이트가 주장한 대조 이론이 있다. 그리고 베르그송은 이러한 이론들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이 연구를 시작한 것 같다고 정연복 교수님은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했다. 

 

 책은 크게 3장으로 나눠져있다. 


  1. 희극성
  2. 상황의 희극성과 말의 희극성
  3. 성격의 희극성 


모든 내용이 흥미로웠기에 나는 밑줄을 그어가며, 노트에 적어가며 오랜만에 아주 열정적으로 탐독했다. 마음 같아선 베르그송이 각 챕터마다 주장하는 바를 다 옮겨 적고 싶지만, 내가 옮겨 적는 것 보다 이 책을 직접 사서 읽는 것이 훨씬 빠르고 유익한 방법이기에 이 글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주 힘들게 추려낸 인상적인 부분들만 한 번 정리해볼까 한다. 


 사실 이 책의 전체에서 베르그송이 웃음을 바라보는 관점은 굉장히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는 대비의 연속을 통해 그의 연구를 설명하는 데 예를 들면 자동화된 것, 기계적인 것, 경직성을 유연한 것, 생명적인 것과 대비시킨다. 그리하여 삶의 근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운동성, 시간성, 지속성을 강조한다. 


 가장 처음 책을 펼치는 순간 역시나 물음표로 시작된다. 


 ‘웃음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웃는가?’

그리고 뒤이어 ‘어떤 증류 기법이 있길래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매번 똑같은 원액을 추출해내는 것일까?’라고 말한다. 

 우리는 정말 다양한 이유로 웃지만 결국 그 웃는 행위는 모두가 똑같다. 그것을 저런 문장으로 표현해낸 것에 나는 감탄했다. 


그는 희극성 파트를 총 다섯 가지로 나눠 연구한다. 


  1. 희극성의 개요 
  2. 희극성의 원천
  3. 형태의 희극성
  4. 움직임의 희극성
  5. 희극성의 확산력


첫번째 희극성의 개요는  

1. 인간적인 것 2. 무감성 3. 반향 


이 세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1. 인간적인 것이 직접 연관되지 않는다면 희극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예로 풍경은 우스꽝스러울 수 없지만 인간은 그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므로 인간이 웃는다면 그것은 인간과의 유사성, 인간이 남긴 흔적, 인간이 어떤 작용을 가했는지를 보고 웃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은 늘 예시와 함께 전개되는데 이러한 예시를 통해 독자의 이해는 쉬워진다.

 내가 읽었던 철학 책 중에 이번 책은 정말 친절한 편에 속해서 더욱 잘 읽혔다. 

 

 2. 무감성을 설명하며 그는 평온하고 균형 잡힌 영혼을 자극해야만 진동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또한 희극성이 충분히 구현되기 위해서는 감성이 배제되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희극성은 순전히 지성에 호소하는 것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나에게 희극과 지성을 연관시키는 것이 생경했기 때문이었다. 

3. 반향을 설명하며 인간은 자신이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 경우엔 희극적인 것을 감지하기 어렵고, 그러므로 웃음은 반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참신했던 부분 중 하나는 다음 내용을 예고해 준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챕터의 끝자락에서 그는 다음에 이어질 연구 내용에 관해 언급을 한다. 

이것은 두 번째, 세 번째 챕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의 연구를 읽고 나서 그다음 연구가 앞서 읽은 연구와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방향성에 초점을 맞춰 읽어야 할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희극성의 원천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본격적으로 앞서 말했던 ‘대비’가 등장한다. 


 ‘ 세심한 융통성과 민첩한 유연성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기계와 같은 뻣뻣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웃음을 자아낸 것이다.’

‘ 고정관념의 경직성이 정신적 기질에서 비롯된다고 한다면, 인간적 결함은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결함의 대부분은 왜곡된 영혼에서 비롯된다.’

 ‘ 우리는 결함으로 인해 유연성을 잃고 굳어진다. 우리 때문에 결함이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결함 때문에 우리가 단순해진다. 여기에 바로 희극과 비극의 본질적 차이가 있다.’


 베르그송은 여기서부터 문학 작품들과 거기 등장하는 등장인물들 예시로 든다. 그 과정을 통해 몰리에르나 라비슈의 작품들 또한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는데 옮긴이의 말에서 정연복 교수님은 이 부분을 지적했다. 그가 이러한 작품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말이나 행동을 실제 인간들인 것처럼 분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자신에게 희극이란 ‘삶과 예술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2-1 상황의 희극성에서 ‘연극이 삶을 과장하고 단순화시키긴 해도,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는 일상생활보다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고 언급했다. 

 

 2장에서도 꾸준히 그는 생동감과 기계적 대비를 언급하며 그 간극에서 빚어지는 사건이 모두 희극적이라고 설명한다.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기계 부품과 같은 이상을 주는 행동과 그로부터 빚어지는 사건은 모두 희극적이다.’ 


 2-2에서는 언어의 희극성은 행위나 상황의 희극성이 말의 차원에 투사된 것에 불과하다며 관용구의 틀에 부조리한 생각을 삽입하면 희극적인 말이 된다고 설명한다. 

뒤이어 여기서는 현실과 이상, 있는 것과 있어야 할 것의 대조를 진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유머와 아이러니를 설명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유머는 아이러니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아이러니와 유머는 둘 다 풍자의 형식인데, 아이러니가 원래 웅변적인 것이라면 유머는 좀 더 학문적이다.’


 그는 이 챕터를 마무리하면서 인간의 기계적인 부분과 타성에 대한 경계와 생동성의 중요함에 대해 희극 분석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는 가장 정확하게 인간 정신의 형태를 반영한다. 우리는 언어에도 우리의 삶과 같이 살아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낀다.’ 

 ‘자유로운 활동에 대비되는 자동주의, 이것이 바로 웃음을 집어내고 교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출발점으로 우리는 희극성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마지막 3장 성격의 희극성에서는 본격적으로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베르그송은 예술과 희극을 구별하면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는 어떤 존재인가, 다른 예술과 희극의 차이는 무엇인가에 대해 매우 섬세하면서도 매력적인 분석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어떤 것도 명료하게 지각할 수 없는 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아니 인간과 인간의 의식 사이에 베일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 베일은 보통 사람에게는 두껍지만, 예술가나 시인에게는 얇고 거의 투명하다.’


 ‘회화든 조각이든 시든 음악이든 예술의 유일한 목적은,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여러 상징물이라든지 관습적, 사회적으로 통용되어온 모든 것, 요컨대 실상을 가리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데 있다.

 예술가는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실상을 직접 대면하도록 해주는 사람이다.’

 

 실상을 대면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비물질적 인생관이 있어야 하며, 감각이나 의식 속에 독특하게 깃들어 있는 타고난 초연성을 가지고 삶을 바라봐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특히 그가 예술이 언제나 개별성을 지향한다고 말하며 예시를 든 것이 매우 인상 깊었다.

화가가 화폭에 담는 것은 어떤 장소, 어느 날, 어느 시간에 본 것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색깔을 띤 것이다. 그리고 시인, 극작가, 다른 모든 예술가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오직 한 번 일어날 뿐 결코 반복되는 법이 없는 것을 보여준다. 

이 대목을 읽고 내가 가져온 수많은 감정들을 기억에서 더듬어봤다. 비슷한 감정들은 있어도 완벽하게 동일한 감정은 없었으리라 생각했다. 베르그송은 우리가 느끼는 온갖 감정들은 하나하나 모두 개체화가 되었고 이런 이유로 특히나 감정은 예술의 영역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앙리 베르그송의 본문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에 있는 ‘옮긴이의 말’이 정말 정말 재밌고 독자로 하여금 만족스러운 탐독을 마무리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단언컨대 여태 내가 읽었던 옮긴이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곱 페이지였다. 정연복 교수님은 이 책을 옮기게 된 동기를 세 가지로 나눠 설명하셨다.

  1. 1900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프랑스에서는 아주 놀라운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많은 관심을 끌었는데 한국에서는 그다지 읽히지 않았다는 아쉬움.
  2.  19세기 유물론과 기계론 및 결정론의 영향 아래 만물을 과학적 분석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에 반하여, 내부에서 직관을 통해 파악되는, 즉 시간 속에 흐르는 우리 자신의 인격과 접촉하기를 갈구했던 베르그송의 철학에 한 걸음 다가가고자.
  3. 우리 사회에 웃음과 희극, 희극성에 관한 논의가 너무 없다는 점에 대한 반성.


 ‘우리는 늘 누군가의 책을 읽고 그에게서 배우고 그를 넘어선다. 베르그송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 작은 책을 통해 베르그송이 펼친 논리가 널리 수용되고 비판받기를 기대한다.’


 이 책은 처음 책머리부터 마지막 옮긴이의 말까지 정말 단 한 부분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나에겐 완벽한 책이었다. 오랜만에 정말 신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고 그 기쁨은 늘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시간에 만족을 가져다준다.

 

 나는 거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모든 것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을 사랑하고, 그 순기능을 보다 쉽고 흥미롭게 실현할 수 있을 때 완벽한 환희를 느낀다. 이 책은 철학의 순기능을 정말 친절하고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도 모르게 늘어가는 타성에 대한 경각심 또한 일깨워준다. 


‘영혼은 가볍게 날아다니면서 자신이 생명력을 불어넣은 육체에 무엇인가를 전해준다. 

이렇게 물질 속으로 불어넣어진 비물질성을 우리는 우아함이라고 부른다. 

우아함을 망쳐놓으면, 몸은 희극적 효과를 얻게 된다. 따라서 희극성의 본질과 대립되는 개념은 아름다움보다는 우아함이다. 희극적인 것을 추함에서 비롯된다기보다 뻣뻣함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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