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 지느러미 TURN 1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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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지 않는 물의 이미지가 있다. 어릴적 스노쿨링 고글 너머로 본 거대한 검은 바위 밑, 더욱 어둑하고 짙은 공간. 물속에서 본 바위는 생각보다 웅장한 본체를 깊은 물속에 숨기고 있었다. 검은 바위보다 나를 단번에 압도한 것은 바위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물이었다. 무엇이 등장하든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시커먼 물은 두려움이자 모험을 떠나야할 것만 같은 미지의 세계가 되었다. ‘입속 지느러미’는 그런 미지의 세계로 기꺼이 발을 내딛은 ‘선형’이 등장한다. ‘피니’의 존재는 오싹할 정도로 달콤한 노래다. 피니에 대한 선형의 마음을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너무나 얄팍하게 느껴질 정도로 선형에게 있어 피니는 강렬한 존재다. 작중 장 사장의 말에서 선형의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거 알아?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계속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이해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다 상관없어져.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지. 어차피 끝내 알 수 없을 테니까. 나 아닌 모든 존재는 결국 미지의 영역이니까. 그 지점에 이르러서야 깨닫는 거야.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사람을 왜 계속 생각할까?” (143p.)

‘입속 지느러미’는 독특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유지하면서도 ‘피니’라는 존재를 통해 작품에 새로운 빛깔을 입혔다. 작가가 어떻게 항상 맛깔나는 이야기들을 준비해올 수 있는 것인지, 작가는 평소에 어떤 생각들을 하는 것인지 내심 궁금했는데 마침 ‘터닝북’이 이번에 함께 출간되었다. ‘터닝북’에는 작가의 짧은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소개도 만나볼 수 있었다. 작가의 일상적인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온전히 소화하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소설 속 세상이라도 조금이나마 덜 퍽퍽했으면 하는 마음이다.”(터닝북,10p.)

선형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파도를 찰싹이고 있을 피니의 꼬리지느러미가 아른거린다.


※서포턴즈 1기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에 의거해 작성하였습니다.



선조에게 물려받은 집요함의 계보가 어김없이 선형을 갉아먹었다. 그는 언젠가 집착이 자신을 집어삼키리라 직감했다. 어쩌면 이미 끝을 향해 나아가는 중인지도 몰랐다. - P88

노래를 기억해줘. 너로 인해 생명을 얻은 노래를. 네가 다른 누군가의 수조에서 그를 위해서만 노래 부를 바에야, 내 노래를 안고 이 광활한 바다를 떠돌길.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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