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디 러브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우연한 계기에 서점에서 발견한 책.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가 도입부의 신선함에 흥미를 느껴 사버린 책이다. 그리고 늦게 집에 들어갔음에도 끝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잠들게 만든, 상당히 흡입력 있는 책이었다. 어느 정도 인상 깊었던(나쁜 쪽으로든, 좋은 쪽으로든) 작품들에 대해서는 항상 개인적인 리뷰를 써놓는 습관이 있어 이번에도 나름대로 단평을 남겨보기로 했다.
이 작품은 어린이 유괴사건을 중심으로, 가해자와 유괴된 아이 그리고 아이의 가족이라는 세 당사자들에 대한 밀도 있는 관찰과 묘사 그리고 고민을 담아냈다. 조금 구체적으로 소설 구조를 보자면 작품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그 분장의 기준과 배치 자체가 작품의 큰 얼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각 부는 각각 [1부)유괴 사건 당시 2부)유괴범과의 오랜 생활 3부)아이의 탈출직전 ~ 그 이후] 라는 순차적인 시간 흐름에 따라 종적으로 나뉘어 있다. 여기에 각 부는 서술 초점을 [1부)유괴범 2부)유괴된 아이 3부)아이의 가족(특히 엄마쪽)]에 맞추면서 횡적인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 시간-인물이라는 두 축은 ‘이유 있는’ 교차를 이루며 1,2,3부를 구성한다. 1부는 유괴범의 범행 계획, 실행, 사건 은닉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그리면서 사건의 ‘처음’이라 할 수 있는 범인의 욕망과 동기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2부는 시간 순서상으로 전체의 ‘중간 과정’에 속한다. 따라서 성장 ‘과정’중에 있는 아이가 생존과 정신적 안락함을 위하여 어떻게 노예화 되어가고 심지어는 범인과 어느 정도 동화해 가는지 그 심리변화의 ‘과정’을 보여주기에 더없이 알맞다. 마지막으로 3부는 아이를 잃은 가정이 어떻게 황폐해져 가는지 사정없이 묘사한다. 그리고 심지어 아이를 되찾았을 지라도 그 상처는 절대로 과거형이 될 수 없으며 영원한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들의 이야기가 마지막에 오는 것은, 이전까지의 이들의 삶은 아이를 찾았다는 소식을 접하기 직전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가혹한 굴레는 3부에서 다루는 시간만이 아닌 아이를 잃은 그 순간부터 반복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결말을 여전히 끔찍한 미래/희망적인 치유의 가능 성 중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독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을 듯한데, 나는 그 애매모호한 부분이 독자에게 사유의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기로는 서술방식이 마치 보이지 않는 렌즈가 인물을 쫓아다니면서 마음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리고 이 렌즈들은 내내 일정한 태도와 관점을 견지하기 보다는, 각 부마다 초점을 맞추는 인물들에 상당 정도 감정을 이입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작가가 전체적인 사건에 대해서 특정한 해결방안이나 태도를 제시하는 등 직접적인 계몽적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다만 작가는 ‘보여줄’ 뿐이다. 끔찍한 사건의 처음과 끝(실제로는 끝나지 않고 계속될)을 인정사정없이 보여줄 뿐이다. 그 다음의 사유는 독자에게 남겨진 영역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작품은 근래 범람하는 일반적인 스릴러 장르소설과는 조금 다르게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묘사와 드라마틱한 대반전 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다음 장을 넘기게 만드는 필력과 생생하고 잔혹할 만큼 리얼한 심리묘사, 전 세계적으로 이슈화 되고 있는 아동유괴 성폭력에 대한 인사이트 등은 이 책을 사 읽을 충분한 이유가 되어준다.
단!
번역자는 자신의 번역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겠다. 읽는 곳곳에서 거슬리는 번역체 문장과, 문맥상 오역으로 보이는 곳도 있다. 번역은 한 작가가
다른 나라에 소개될 때 그 인상과 파급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좀더 성의있는 번역을 했으면 하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