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 스코필드 박사의 3·1 운동 일기 근현대사 100년 동화
김영숙 지음, 장경혜 그림 / 풀빛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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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터널에서 빛이 된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이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 운동이었어요

거기에 34번째 민족대표가 있었어요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프랭크 스코필드(석호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던

독립운동가의 내용이에요

한국에서 날아온 편지 한 장

애비슨 박사님에게 한통의 편지를 받게 돼요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서

세균학을 가르쳐 달라는 편지였지요

그 시기는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죠

스코필드 박사님은

소아마비의 몸으로

아내와 함께 두 달을 배를

타고 이동합니다

석호필로 다시 태어나다

목원홍 선생님께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한국어가 익숙해지고

한국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석호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돌 석, 호랑이 호, 도울 필

석호필 박사님은 바쁘게 보냈셨겠지만,

임신한 아내는 몸과 마음이 힘들어져

떠나는 모습이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에요..

탑골 공원에서 터진

3.1 만세 함성



10년간 억눌러 온 감정을 터뜨리는 듯

"대한 독립 만세!"

나는 대열에 섞여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거리를 누비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눈 팡아 펼쳐진 만세 행렬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고 놀라웠다.

참혹한 학살의 현장에서

셔터를 누르다



제암리 대학살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79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와 11명의 보병 및 경관이 함께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의 마을 주민들을 기독 교회당에 소집하여 총을 쏘았고, 교회당과 마을에 불을 질렀다. 제암리 사건은 기독교 선교사와 미국·영국 총영사관의 조사로 국제 사회에 알려졌으며, 일제의 만행이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부분에서 화가 나고

가슴이

타는 듯했어요

지금의 경기도 화성에 이런 학살이 있었는지

몰랐거든요..



제암리 마을은 참혹하게 불타 있었고

일본의 만행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스콜필드 박사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다

직접 조사한 사건 내용을 토대로

<제암리의 대학살> 은 중국 상하이에서

발행되는 영어 신문인 상하이 가제트에 투고

<수촌 만행 보고서>는 비밀리에

미국으로 보내 장로회 기관지에

실리게 하였다.

학살 보고서 반출

대작전

일본 눈에 가시였던

스코필드 박사는 세브란스

근무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서 캐나다로 돌아가게 돼요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들키지 않고 반출하기 위해

장애가 있는 다리에 두툼한

보고서 뭉치를 대고 붕대를 칭칭

감고 캐나다로 향했어요

마음은 언제나 한국에

캐나다에서도 바쁘고 보람 있게

보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서는

한국을 그리워했어요

학교를 은퇴하자마자

다시 한국행~

서울대 수의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영어 성경 반을 이끌고,

가난한 이들과 나누며 한국에서

살아갑니다.

저희 아이에게

어려운 내용 일수 있는데

아이도 집중해서

책을 읽네요..




총, 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은

자주독립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의지를

잊지 말기로 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고 본인의 주관적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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