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즈만이 희망이다 - 디스토피아 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어떤 위로
신영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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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난 현대의학이 놓아버린환자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자기가 버림받지않았고, 몸과 마음이 평온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를 모색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내가 돌보고 있는 말기암환자는 현대의학으로 근원적인 치료가 불가하여, 증상에 대한 호스피스 완화치료가 필요하며, 수개월이내 사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환자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삶의 모습을 찬찬히 들어보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생각과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청사진처럼 드러난다.

 

가지고 있는 많은 실존적인 고통들은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 우리 사회에서 빛나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들, 즉 건강한 삶의 이상적 이미지, 미래를 약속해주는 과학과 의학 기술의 진보, 모든 의료 자원을 다 지원해 줄 듯한 진보 정부의 거창한 약속, 가족 간의 화목한 관계를 강요하는 유교적 환상의 빛에 길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담당의사가 자기를 버렸다며 남은 소중한 삶을 부정과 불만으로 보내는 환자들, 병원비로 말기암인 아들을 돌보지 못하고 그 시간에 다른 사람을 돌보야 하는 요양보호사 어머니, 아버지를 간병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니던 비정규직 일자리를 그만 두어야 하는 딸, 경제적으로 어렵고 아무도 지지해주지 못하는 말기암 중년 남성의 자살 시도.

 

그들 모두 사회의 퓨즈. 신영전 교수님이 이야기 하고 계신 우월한 생, 건강, 노인, 자살

희망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엔 아픔이 없다로 통한다. 단일한 아픔들의 일회적 소비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의 굴곡으로 생긴, 수많은 생채기로 얼룩진 수많은 아픔들의 연대가 필요하며 그들의 연대를 뒷받침해야 하는 수많은 미래의 퓨즈들이 스스로의 틀을 깨어야 한다. 그래야. 그 퓨즈들의 존재가 희망이 될 수 있다.


* 한겨레서평단으로 책을 제공받은 후 쓴 글입니다.

 

 

 

사람은 불완전하게 태어난다.
우월한 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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