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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로와나
박성경 지음 / 폭스코너 / 2020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수백 년 전의 헤스터 프린과 80여 년 전의 나혜석, 그리고 현재의 해수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35 혹은 53세 여성의 삶을 다룬 책이다. 삶의 중심에서 굳건히 버텨나가는 '나와 뭔가'에 관한 꼼꼼한 기록이다.
작품 속에서 해수의 삶은 끊임없이 침벙당한다. 갑작스레 맡게 된 아로와나는 해수의 협소한 옥탑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외간 남자는 내 방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칙을 깨고 아랫집 석이는 수시로 옥탑방을 드나든다. 그렇게 막고 싶었던 주인님도 옥탑방을 방문하고 냉장고 냉동실은 아버지가 보낸 옥수수에 점령당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침범당한다. 주인공과 연대한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해수에게 빚만 남긴다. 하지만 해수는 절망하지 않는다. 오래전 다른 대륙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라고 믿으며, 80여 년 전의 나혜석처럼 '세 개의 태양'을 향해 오늘도 걸어간다.
소신 있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특히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촘촘하게 보여주지만 시종일관 가벼운 문체로 나아간다. 팍팍한 삶 속에서 타인에게 무관심하려고 하지만 결국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잃지 않는다. 이 가벼운 발걸음과 따뜻한 시선으로 끝까지 자신만의 삶과 작품을 완성해낼 것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