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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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언수 작가님의 신간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2년의 기다림을 달래주는 듯한 거의 600쪽에 가까운 긴 장편 소설. 손에 쥐자 마자 그 두꺼운 책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만날 생각으로 두근거렸다. 

  '뜨거운 피'는 부산의 조그만 구암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건달들의 이야기다. 그 건달들은 시시껄렁하다. 전국구로 세력을 떨치는 영도의 건달들과는 달리 구암의 조그만 항구를 지키며 낮에 츄리닝이나 입고 돌아다니는 일개 동네 건달들일 뿐이다. 주인공 '희수'도 마찬가지다.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는 건달들 중 한명이다. 

  이 구암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매우 뜨겁다. 평범한 도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겐 화끈하고 강렬한 누아르이다. 소설 속의 굉장히 자극적이고 잔인한, 무시무시한 사건들은 책을 읽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게, 혹은 평범하게, 어쩌면 무난하게 다가온다. 이것이 내가 김언수 작가님을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이다. 한바탕 이야기들이 휩쓸고 지나가서야 꿈벅꿈벅 천천히 정신이 드는 것이다. 마치 바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타났다하는 마술같다. 얼이 쏙 빠진다. 그런 능청스럽고도 믿음직한 매력이 있다.

  특히 중후반부로 갈수록 사건이 휘몰아치면서 정신없이 빠져서 읽게 되었다. 읽는 내내 나도 '희수'와 같이 피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와 함께 뜨거운 피를 느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모든 이야기의 전개는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후반부는 깔끔하기 이루 말 할 수 없다. 마치 잘 만든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이미 내 머릿 속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좋았다. 특히 이런 영화같은 결말의 주인공이 별 볼 일 없는 쓰레기 동네 건달이라는 점이 제일 좋았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끝났다.

  하지만 진정한 반전은 남아있었다. 사실 이 책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책의 끝 부분의 작가의 말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말을 다 읽는 순간 이 구암의 뜨거운 이야기를 깔끔하게 툴툴 털어 낼 수 만은 없게 되었다. 짭짤한 바닷물로 얼굴을 씻고 차가운 세계로 들어가 버린 '희수'의 뒷모습을 나는 어떤 눈빛으로 바라봐야 할까. 괜히 도시 한 가운데에 위치한 내 방에 꿉꿉한 바다의 짠내가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김언수 작가님의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아직도 나는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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