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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라디오
모자 지음, 민효인 그림 / 첫눈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에세이를 거의 읽지 않는다.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에세이는 아무리 유명한 작가가 썼다고 해도 졸음이 온다.
집중해야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못한다.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면 저절로 멍...해진다.
그렇기에 내가 누군가랑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면 그건 엄청 노력을 한 결과이다. 집중하려고 모든 의식을 그 사람의 말과 표정에 쏟아부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에세이도 힘겹다. 남들은 쉽게 읽는다는 에세이가 나는 참 지루하고 졸리고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관심 없는데?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못된 생각이 툭툭 튀어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오랜만에 잘 읽히고 꽤나 재미있는 에세이를 만났다. 모자를 좋아하는 '모자' 작가의 책 「방구석 라디오」이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몇 년 전에 괜찮게 읽었던 강세형 작가의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성도 그렇고 강조하는 부분의 글씨체도 참 닮아있었다.
사실 개인적인 이야기나 감상을 적는 에세이의 특성상 모든 부분에 공감할 수는 없었다. 때론 '나는 다르게 생각하는데...' 또는 '이 부분은 별로 공감 안 되네.' 이런 생각들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작가의 깔끔한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더불에 곳곳에서 묻어나는 생각의 방식도 좋았다.
공감되었던 몇 부분들을 적어두려고 한다.
달콤한 것이 먹고 싶을 때가 많다. 스트레스가 머리까지 차오른 날에는 달콤한 시럽이 잔뜩 들어간 커피가 간절해진다.
카페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 순간부터 고민은 시작된다. 달콤한 음료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시럽을 뺀 음료를 먹을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엔 후자를 택한다. 순간의 행복보다는 앞으로의 모습이 더 걱정된다. 그렇게 단 것들이 쌓이면 결국 살이 찌고 말 거라는 걱정에 달콤함을 포기하게 된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뭐가 현명한 건지.
그래도 그 시기가 좋은 거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많이 만난다. 취업 때문에 상담을 하고 고민을 털어놓아도, 그들은 뭔가 달관한 표정으로 '그래도 그때가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진심으로 엄청 세게 때려주고 싶을 때도 있다. 아픈 사람에게 그래도 그 시기가 성장시켜줄 거라고, 더한 고통에 면역력을 줄 거라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당신에게 당신의 고통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나의 고통이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더 어리다는 이유로 차마 말은 못하지만.
이 부분은 좀 인상 깊어서 찍어 보았다.
작가는 이른바 '도를 아십니까'를 묻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그렇게 묻는 여자가 있기에 피하려고 하는데... 그 여자가 사진 속의 말을 했다고 한다.
영원히 고통받을 거라니. 그런 말을 다른 누군가에게 하다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천국은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혹시나 그들이 천국에 가게 된다면, 그런 부류가 모인 그곳은 지옥일 수밖에 없다.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난 건데, 나 예전에는 사람들 눈을 못 마주쳤었다.
뭐랄까 굉장히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흠... 그때는 스스로가 엄청 못생겼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극복을 했고,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걸 좋아하게 됐다.
휴... 요즘은 스스로가 왜 이렇게 미운 건지.
스스로를 예뻐하면서 살겠다는 말이 유독 절실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글도 좋았지만 일러스트가 정말 예뻤다. 그리고 글과 그림이 잘 어울려서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카페에 새 책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다. 손님들도 좋아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