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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를 안아 준다 - 잠들기 전 시 한 편, 베갯머리 시
신현림 엮음 / 판미동 / 2017년 3월
평점 :
곡 「노래가 필요할 때」를 통해 가수 권나무는 노래가 필요한 순간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끝을 알 수 없어서 다시 흔들릴 때',
'하나씩 불안한 빈틈을 메워가다 용기가 필요할 때',
'햇빛 좋은데 무거워만 있을 때',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감싸 올 때'.
(권나무 노래 「노래가 필요할 때」 중 일부 인용)
노래를 듣다가 문득 나에게 시가 필요한 순간들이 바로 이런 순간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을 알 수 없어서 불안하고 흔들릴 때, 그렇게 불안해 하다가 용기를 내고 싶을 때, 날씨는 너무 좋은데 그 좋은 햇살을 바라보다 눈물이 날 때. 이럴 때면 무언가를 많이 읽어나가는 일도 벅차게 느껴져 얇은 책 한 권 펼치기 어려운 마음 상태가 된다. 그럴 땐 책상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시집들 중 한 권을 골라 펼쳐지는 대로 따라 읽는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어떤 문장들 사이에 멈춰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몸도 마음도 모두 건조하게 느껴지는 수험 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책을 읽는 시간도 사치인 것 같고, 막상 읽으려고 해도 잘 읽히지 않아 마음 속 무언가가 고갈되어 간다고 느낄 무렵, 『시가 나를 안아준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뒤로는 누군가가 엮은 시집들을 잘 읽지 않았다. 나에게도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 원래 좋아한다고 말하던 것들과는 점차 멀어지고 있는 요즘, 뭔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무언가 나를 채워줄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삶은 그렇게 허무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내가 좋아했던 문학들이 무용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그것들을 애틋해 하며 읽었던 시간들이 낭비는 아니었다고 말해 줄 수 있는 것들... 그런 게 필요했다.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인적이 드문 어둑한 길, 혹은 시끄러운 번화가에 혼자 조용한 노란 불빛을 켜놓은 가게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문장을 골라, 예쁜 종이에 써서 파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부디 문장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잠깐의 따뜻함이라도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씨를 옮겨 적는다. 내가 그 문장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손님이라면, 행복하지 않을까? 따뜻한 붕어빵을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꼈던 마음처럼.
『시가 나를 안아준다』를 읽는 동안 따뜻했다. 나는 비록 불특정 다수인 독자들 중 한 사람의 위치에 있을 뿐이지만, 시들이 마치 날 위해 나란히 서 있는 것 같았다. 이건 널 위해 골라진 문장들이니까 마음 놓고 따뜻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문학을 읽으며 자주 생각한다. 나는 왜 이런 게 좋아서 여기까지 왔을까. 남들처럼 조금 더 어린 나이에 대기업을 꿈꾸고,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과 관련된 스펙을 쌓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며 후회할 때가 많다. 나는 왜 책을 읽었고 그렇게 좋아했고 그리고 출판사에 가지 못 해 많은 날들을 울었을까. 아무리 물어도 답을 찾을 수 없고 원망만 쌓이는 날들이 연속된다. 그러다가도 어떤 날은 단번에 깨닫곤 한다. 시집에서 어떤 문장을 만났을 때, 어떤 문장을 보고 마음이 내려 앉았을 때, 그래서 너무도 필요했던 그 무언가가 차고도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이래서 이런 걸 좋아했었지, 생각하게 된다. 정말이지 시가 나를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