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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소녀는 소녀의 라이벌이다. 시공간을 달리한다 해도 경쟁하고 미워해도 같은 운명을 가진 이유로 서로의 고통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여자들. 그러면서 여전히 질투하고 시기하지만 애정하게 되는 여자에서 여자로 이어지는 다정한 연대의 <다정한 유전>
해인마을의 아이들은 그릇된 꿈을 꾸거나 일탈하지 않고 성실하게 십대를 보내고 때가 되면 결혼하여 독립하고 스스로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부모로부터 진 빚을 갚아왔다. 세대에서 세대를 거듭하며 오직 한 마을 안에서 헌신과 인내를 다했다.
어느 해, 한 명의 소녀가 마을을 떠났다. 이것은 일탈이 아닌 성장이고 도약이라서 글을 쓰는 소녀들은 기회를 얻기위해 경쟁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이해하고 사랑한다. 해인마을을 떠난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여성이 짊어진 양육과 헌신이라는 운명의 울타리를 글쓰기라는 수단을 통해 뛰어넘는다는 것으로 보인다. 운명을 벗어나도 울타리에 안주해도 고통은 여전하고 사랑은 포기할 수 없는 법이 아닌가? 해인마을을 벗어나 새로운 연대의 유전은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일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의 구분을 알 수 없는 소설 속에 소설이 있고 덧대어진 이야기들이 조각처럼 튀어나오지만 정확하게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보통 책을 반쯤 읽고나면 스토리의 맥락이 확실히 잡히고 흥미진진해지는데 이 책은 마지막을 덮는 순간까지 반쯤 엉킨 실타래를 움켜진 기분이었지만 분명 손에 남아있는 기운은 따뜻한 것이었다.
처음 마을을 떠난 소녀는 누구인가? 교통사고를 당한 소녀는 지우인가?선아인가? 선아는 지우에게 사과하기 위해 첫소설을 썼던 것인가? 민영과 진영의 경쟁의 결말은? 둘은 소설속의 인물인가 아닌가? 옹주는 누가 쓴 것일까? 다락의 여자는 누구인가? 소설대신 감상문을 쓴 것은 누구인가?
스토리 인물들의 관계를 맞추려고 보면 자꾸 어긋나고 어렵지만 소녀들 사이의 마음은 여성이기에 쉽게 잘 읽힌다. 경쟁과 질투 속에서도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기에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쓰고 읽는 행위를 통해 연대하고 자극하고 함께 하며 생존의 라이벌이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