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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늘의 나로 충분합니다
백두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2월
평점 :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특별할거야’라는 희망찬 기운보다 ‘오늘이 또 시작이구나’라는 마음에 이불 밖은 위험해를 몸소 시전한다. 오늘보단 내일은 나아질거란 생각에 대부분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생각하니 서글프다. 오늘은 특별하지도 않고 굴레처럼 반복되는 삶에 지나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는걸까? ≪그러니까 오늘의 나로 충분합니다≫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괜찮은 위로를 건네보자.
p.22 [여전히]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웬만한 일에는 끄덕없이 잘 버티고.
비바람 정도는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다고.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에 여전히 휘둘리기도 한다.
어른이라고 천하무적은 아니다.
어릴 적 장래희망은 ‘어른’이었을지도 모른다. 과학자, 프로그래머, 연예인까지 직업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어른’이 되어야 하는 공통 조건이 있다. 그만큼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무엇이든 잘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멋있었고 나도 늠름해진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어도 어른이 되기 쉽지 않다. 어쩌면 ‘어른은 이러면 안돼’ 라는 생각에 아닌 척, 괜찮은 척, 태연한 척만 늘고 행동은 더욱 소심해졌는지도 모른다.
“네 나이면 좋을 때야”, “결혼 전에 즐겨, 지금이 딱 좋을 때야”라고 옆에서 말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안다. 어쩌면 과거를 추억하는 행동이 미화되고 좋은 기억만 갖게 되는 건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지금을 추억하겠지. 그러면 오늘의 나로도 충분하다는 것임을.
책에는 30대 여성의 삶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그림과 함께 잘 녹아있다. 아닌 척 무덤덤하게 지내는 어른이 되어 꿈, 연애, 부모님에 대한 고뇌가 잘 담겨있다. 아이돌을 좋아해 30대 팬덤을 발휘하는 저자의 모습은 그 중에서도 재밌는 에피소드이다. 10대 팬과 섞여 스탠딩 콘서트에서 휘청거리기도 하고, 브로마이드를 모으기 위해 필요 없는 물건을 막 사서 모으기도 한다. 어른이라 하면 철 없는 행동일까? 나이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팬이 될 수 있는 마음 따뜻한 인간임을.
p.190
“나는 엄청 잘 지내. 일도 잘 하고 있고. 잘 먹고 잘 놀고 있지. 요즘 좋아, 엄마는?”
“엄마도 당연히 잘 있지. 이제 안 아파. 다 나았어. 응응. 그래 끊자. 딸”
엄마도 나도 점점 거짓말이 능숙해진다.
새해를 맞이하여 편지를 쓰면 ‘어느새’ 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새해에 가졌던 목표는 ‘여전히’ 작심삼일이 되어버린다. 저자도 책에서 제일 많이 쓴 단어가 ‘어느새’, ‘여전히’라는 단어라고 했다. ‘어느새’ 시간은 저만치 흘러갔지만 나의 모습은 ‘여전히’ 남아있다. 상충되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단어 두 가지가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듯 하다.
부모님 눈에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도 아직 어린아이로 보인다고 하신다. 키도 다 크고 나이도 찰만큼 찼는데 어디가 어린아이인지. 부모님 말처럼 사실 어른이 된 것 보다 잘 지내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짓말 잘하는 나쁜 어린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어른이 어떤 의미일까 많이 생각하게 했다. 사랑, 연애, 직장까지 어른이라면 해야 할 것들이 생기지만 미처 잘 잊고 지냈던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많이 느꼈다. 가장 소중한 건 바로 주변에 있다고. 서툴지만 누구나 처음이고 어색할 수 밖에 없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는 걸. 아이처럼 보이는 부모님 눈에 좀 더 늠름한 아들이 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마음을 들게끔 만드는 뭉클하게 만드는 에세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