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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ㅣ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도 왜 우리는 변하지 못하는가?
‘골든아워’의 뜻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골든아워는 사람들이 많이 시청하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황금시대인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이다. 하지만 생과 사의 사이에서 인간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시간 역시 ‘골든아워’이다. 유명한 외과의사인 이국종 교수는 자신이 있었던 경험들을 ≪골든아워≫에 담아냈다. 1분 1초가 왔다 갔다 하는 촌각의 사투에서 벌이는 치열한 전투를 책에서 읽을 수 있다.
p.10
지금으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 뒤, 또 다른 정신 나간 의사가 이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보고자 마음먹는다면, 우리의 기록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기록의 일환이다.
두 권의 책으로 이뤄진 ≪골든아워≫는 그가 의사가 되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세월의 기록을 자세히 적어놓았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의사가 되었지만 녹록치 않았던 의사로서의 시작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그는 현역으로 군대를 가게 된다. 해군의 갑판수병으로 복무하면서 의대생과 다른 군복무 형태를 갖게 되었지만 그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를 그 곳에서 배웠고 이는 인생의 방향타가 되었다.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병원이 아닌 지방에 있는 아주대병원으로 가게 됐다. 하지만 지원을 주는 대기업인 대우의 해체가 있게 되면서 더욱 상황은 어려워졌고,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외상외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외국으로 나가서 연수를 받게 되면서 시스템대로 실행되는 모습에 놀라움을 겪는다. 고작 우리나라의 현실은 1940년대였기 때문이다.
“네가 환자에게 가까이 접근할수록 환자를 살릴 기회가 많아 질 거야.”
그 때 말했던 교수의 말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어떤 환자라도 조건에서 환자를 언제나 상황에 우선한다’는 원칙을 세우게 된다.
원칙을 지키게 되지만 그로 인해 많은 대립도 생기게 된다. 사람부터 먼저 살려야 하는 외과 특성상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 제시하는 적정 투여량을 맞출 수 없었고 근거에 따라하지 못했을 때 받는 페널티로 인해 수익 악화의 원흉이 되는 것 같아 고민도 하게 된다.
p.171~173
며칠 후 여자가 깨어나고 사고 경위는 뒤바뀌었다. 처음에 남자에게 맞았다고 했던 여자는 문고리에 배를 부딪쳤다고 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의사로서 해야 할 말만 전했다. 돌아서는 내게 간호사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화가 나 있었고 수간호사의 표정은 심각했다. (중략) 그런 문제들에 고작 의사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지에 선 말단 노동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내 업의 범위 안에 있는 것들일 뿐이다.
의사로서 많은 제약을 느꼈다. 행정상 어려움은 물론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실을 알지만 나설 수 없는 그에게 제한된 범위만을 가능하게 했다. 누가 봐도 가정 폭력을 당하고 생명까지 위협 받는 상황이었지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 다시 거짓말을 하는 아내의 모습은 참 답답하게 했다. 명확한 한계에서 수긍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참 답답했다.
p.258
병원 안팎으로 나를 향해 겨눈 무수히 많은 칼들이 날을 바짝 세우고 희번덕거렸다. 나는 한낱 지방 병원의 외상외과 의사였다. 나의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칼을 겨누게 하는지 좀처럼 헤아려지지 않았고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사는 것의 지리멸렬함이 지겹고 지난했다. 환자들이 쏟는 핏물이 나를 완전히 삼켜버리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제한된 상황에서 안주하지 않았다. 절차에 따라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상황에서 과감한 판단으로 살릴 수 있었던 석선장의 송환과 치료 과정이 있을 수 있었고 정치 논리보다 언제나 사람을 먼저 살리는 의사의 가장 기본 된 원칙을 지켜나갔다. 이익에 따라,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헬리콥터 착륙을 지정하는 상황을 지적하기도 하고 자유를 희생하고 국방의 의무만을 강요하는 국가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도 했다.
두 권의 책은 단순히 한 의사의 시선에서 벗어나 사회를 조금은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바뀌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울린다. 다소 따뜻함이 느껴지기보다 차가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 의사의 이야기 일 수 있지만 그 울림이 강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골든아워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더욱 치열했던 고민과 과정이 녹아져 있어서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