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지 세상을 떠도는 유목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속감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준다. 때로는 구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지만 어디에 소속되어 있다는 마음이 주는 안정감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늘 어디에 우리는 소속되어 살아간다. 이것이 자의에 의한 것 일수도, 타의에 의한 것 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또한 어디 속에서 우린 소속되어 있을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는 소속, 그리고 나의 존재에 대한 자각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존재가 어딘가에 소속되게 만들지만 도리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고민의 흔적, 이야기를 그린 소설을 읽어보았다.


이런 책의 배경에는 그녀의 삶이 배경이 된 듯하다. 그녀는 21세 때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이민을 가면서 그녀는 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 낀 경계인이 되었다. 어디에도 속할 수 있지만 어딘가 에도 속할 수 없는 그런 이민자의 이야기는 배경의 눈이 되었다. 


p.34

이 도시가 점점 목에 익어가는 것 같았다. 동희는 제 몸 어딘가에서 잔뿌리들이 뻗어 나와 흙을 가르고 축축한 곳을 찾아 스스로 내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들은 본능처럼 익숙한 곳을 감지하고 저 홀로 뻗어 나갔다. 그러니 동희는 아무 일도 한 게 없었다.


동희는 이민을 떠났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4개월이 되었다. 거소증이 곧 만료되는 터라 그녀는 한국 국적과 미국 국적을 택해야 하는 결정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동희에게는 특별한 일이 있었다. 우연히 택시를 같이 탄 그녀에게서 받은 전화번호. 돈을 나중에 송금해주겠다고 받은 연락처는 한 번의 연락 이후 돈을 보내주겠다는 거짓된 약속과 함께 무의미해졌다. 그렇지만 지울 수가 없다. 번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그것이 주는 의미가 있다. 그 때 일과 연결되는 기억을 떠올리는 매개체와 같은 것 말이다.


p.141

로사는 연못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비 내리는 오후와 삽을 든 남편에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에게 들려주는 거였다. 누군가는 찾으려 하고, 누군가는 숨기려 하고, 숨바꼭질은 계속되고, 열쇠는 처음부터 내 마음속에 있었고...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때론 그 마음에 나를 대입해보기도 한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 안에서 이해 받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어딘가에 소속된 것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바뀌었다. 그럴 때마다 새롭게 존재했고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했다.


존재를 다루는 책인 것만큼 밝은 소설이라기보다 어두침침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그래서 밤에 읽기 더 좋은 책일 것 같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도시를 떠도는 노숙자, 난민이 되어 소속되지 못하고 추방되어서 떠도는 사람들도 돌아보면서. 존재의 의미를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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