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두현의 자본론 읽기
성두현 지음 / 해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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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두현의 자본론 읽기』를 추천하며

 

 

 

바로 지금이 『자본론』을 읽어야 할 때

 

 

새삼스러운 이야기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위기에 직면해왔다. 자본가들이 이윤의 잔치를 벌일 동안 실업률은 나날이 치솟았고,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졌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죽어갔다. 환경 파괴의 결과로 기후위기 같은 ‘생태 재앙’ 또한 극심한 수준에 이르렀다. 공장은 밤낮없이 돌아갔고, 이윤의 눈덩이는 불어났지만, 거리에는 집을 잃은 사람들과 굶어죽는 사람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인질극을 벌이듯, “살고 싶으면 감히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하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대안이 있느냐. 현실을 보라.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그렇게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하는 모든 불온하고 급진적인 대안에 사망선고를 내린 후, 그들은 ‘당신들의 천국’을 누리고 있었다. 착취할 인간이 남아있지 않고, 수탈할 지구가 남아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만은 영원불멸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2008년 미국 발 경제위기 이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전 세계의 노동자 민중들은 더 이상 자본주의의 고통 속에 살아갈 수 없다고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 위기를 느낀 지배계급은 “고장난 부분만 고치면 자본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며 현실을 애써 부정하지만, 반창고 붙여놓고 속병이 낫기를 바랄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 노동자 민중은 자본주의를 넘어설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저항이 거세질수록, 지배계급이 섣불리 사망선고를 내렸던 가장 불온한 대안도 되살아오고 있다. 자본주의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 갈수록 분명해지는 바로 지금이 맑스를, 『자본론』을 읽어야 할 때다.

 

 

『자본론』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길잡이가 필요하다

 

 

맑스와 그의 저작들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파헤치고, 자본주의가 빚어낸 피비린내 나는 지옥도를 생생하게 고발한 사상투쟁의 결과물이다. 그 중에서도 『자본론』이 가지는 의미는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라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맑스 스스로 인정했듯 『자본론』은 어려운 책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에 대해 올바로 인식해야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지배계급은 이중 삼중의 안대를 노동자 민중의 눈에 씌워놓았기 때문이다. 마치 착취를 착취가 아닌 것처럼, 폭력을 폭력이 아닌 것처럼, 수탈을 수탈이 아닌 것처럼. 『자본론』은 자본주의가 씌워놓은 기만의 안대를 벗겨낸 책이다. 따라서 처음 『자본론』을 펼치게 되면 생소하고 난해한 개념들과 마주치기 마련이다. 눈꺼풀인 줄 알았던 것이 안대였음을 깨달은 후, 안대를 벗고 바라보는 세상은 낯설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 『자본론』을 읽으면 마치 낯선 광야에 홀로 던져진 듯 헤매다 좌절하기 일쑤다. 그래서 『자본론』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길을 바로 잡아줄 ‘지도’가 필요하다.

 

『성두현의 자본론 읽기』(도서출판 해방)는 『자본론』의 길 초입에 선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잘 그려진 지도다. 앞서 말했듯 자본주의는 “피와 오물을 뒤집어 쓴” 민낯을 감추기 위해 이중 삼중의 안대로 노동자 민중의 눈을 가렸다. 예컨대 임금노동이 아닌 ‘갑질 사장’만이 문제인 듯, 토지의 사적 소유가 아닌 ‘건물주의 횡포’만이 문제인 듯, 노동자 민중의 고통은 ‘일부’ 가진 자들의 탐욕과 일탈 때문이지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자본가가 ‘정직’하고, 노동자가 ‘성실’하면 모두에게 일용할 양식이 돌아갈 것이라는 꿈같은 이야기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환상 중 하나다. 하지만 환상에 매몰되면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특히 본질을 은폐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물신성’이다. 『자본론』은 이 물신성이 만들어낸 왜곡과 환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침으로써, 노동자 계급이 자신을 옭아맨 사슬을 인식하고 끊어 버리기를 촉구하는 실천적인 책이다.

『성두현의 자본론 읽기』가 깊이 있게 다루는 것도 바로 ‘물신성’의 문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라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모순에 고통 받으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도 도마에 오르기 전까진 그곳을 바다라 여기는 법이다. 물신성이 빚어낸 왜곡과 환상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지배가 아닌 기계나 화폐 같은 것들이 문제의 근원이라 인식하게 만든다. 겨냥해야 할 표적을 가리는 것이다. 때문에 물신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실천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성두현의 자본론 읽기』는 『자본론』이해의 핵심이 물신성 이해에 있다는 걸 짚음으로써 자본주의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찬찬히 『자본론』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민낯, ‘한 쪽에서는 부의 축적이 이루어지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노동의 고통과 빈곤, 무지와 타락이 득시글거리는’ 풍경과 맞닥뜨리게 된다. 결국 물신성의 안대를 벗을 때 착취를 착취라 부를 수 있고, 독점을 독점이라 부를 수 있고, 폭력을 폭력이라 부를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이다. 바로 그때 올바른 실천이 나오고 전망이 열린다. 『성두현의 자본론 읽기』는 그런 점에서 『자본론』이라는 저작의 실천적·해방적 의미까지 짚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론』은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맑스의 당부처럼, 길이 비록 험할지라도 가려면 곧게 가야 한다. 맑스가 『자본론』을 쓴 이유는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노동자 계급이 역사의 주인으로 우뚝 서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자본론』은 강단의 칠판에 갇힌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노동자 민중의 사상적 무기라는 것이 이 자습서가 던지는 화두다.

감히 추천하나 하자면, 이 책은 『자본론』원전을 옆에 두고 읽어내려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지도는 길 위에서 볼 때 가장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자본론』학습은 지식 습득을 넘어, 자본주의가 노동자 민중에게 고통스러운 이유를 밝히고, 절망과 탄식을 넘어설 전망을 세우는 여정이다. 『성두현의 자본론 읽기』는 『자본론』학습을 통해 자본주의 너머의 해방세상을 궁리하는 분들께 좋은 길벗이 될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길을 아는 이들에게는 이겨낼 힘이 생기는 법이다. 해방의 먼 길에 나설 모든 분들의 건승과 건투를 빈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맑스, 『자본론』 1판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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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두현의 자본론 읽기
성두현 지음 / 해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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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자본론을 읽는 것은 자본주의의 가면 아래 민낯을 올바로 보는 눈을 틔우는 실천적 과정이다. 그러나 강단위 칠판 속에서 맑스의 실천적 부분과 혁명적 부분은 거세된 지식으로만 여겨졌다. 이 책은 맑스와 자본론이 가진 실천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길잡이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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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이름으로
이인휘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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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가슴 뜨겁다가 서늘하다가, 울컥하다가 쓰라리다가 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은 임금노동이라는 굴레에 질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불꽃이 튀어놀라 번질 때 오리라. 하고 소설은 말하고 있었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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