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 / 창비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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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홍세화씨가 아무 일없이 그대로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가끔 신문 등에 기고하는 그의 칼럼이 지금처럼 설득력있을까를 생각해보곤 한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에는 홍세화씨가 프랑스로 망명할 수 밖에 없던 남한 사회의 정치적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망명을 선택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을 이루려고 했던 홍세화씨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프랑스 사회와의 만남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프랑스를 대표하다고 하는 똘레랑스이다. 우리의 관용이라는 개념과 가장 가깝다는 똘레랑스는 근대 식민지적 기획을 거치면서 여유를 잃은 우리 사회에서도 필요한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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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의 별 10
김혜린 지음 / 팀매니아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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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 만화의 가장 큰 특징은 남자주인공이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죽을 고비를 너무 많이 넘기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총을 맞아도 살아나고, 물에 빠져도 살아나고, 어떤 고문을 당해서 견뎌내며, 혹독한 추위에도 끄덕없다.

북해의 별은 김혜린의 데뷔작이다. 보통의 만화 속에서 중세 시대를 그려내면 귀족 생활이 주를 이룬다는 것에 비해, 북해의 별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혁명적이고, 자신이 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민중과의 삶을 선택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이 만화가 80년 초에 그려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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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박경민 옮김 / 한겨레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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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앵무새는 미국에서만 사는 앵무새과에 속하는 새로서 인간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고 노래만을 불러주는 새라고 한다. 책 속에서는 가부장제에 희생당하는 부 래들리와 인종주의의 편견에 희생당하는 톰이 그 앵무새일 것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이다. 그래서 보수주의를 견고하게 이루고 있는 편견의 한 축인 인종주의 등이 깨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스카웃의 이웃인 머디 아주머니의 말대로 이것은 하나의 시작일 뿐이고, 그 편견은 계속해서 깨져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탈근대적 인종주의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지만...사회적인 소수자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고 차분하면서 재치있게 전개된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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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향수 - 골든세계문학선 046
헤세 지음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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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고향이나 어떤 그리운 것을 떠나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페터 카멘친트의 방랑벽이 계기가 되는 이 소설은, 인생이란 어쩌면 긴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카멘친트는 고향을 떠나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많은 위안을 받는다. 그는 고향을 노래할 줄 알고, 초라한 사람들에게서 작고 소중한 것들을 발견해 낼 줄 안다. 그래서 그는 시인이다. 결국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단순히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 그에게 있어서 고향이 아니며, 그는 다시 <돛을 달아서> 떠날 것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는 것은 멀리 떠나 마음 속에 그리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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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만큼 자라는 아이들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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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에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믿는 만큼 스스로 성장하는, 어른들보다 훨씬 더 우월하고 신비로운 존재라는 그런 글이 적혀 있다.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 방관하지는 않되, 간섭하지는 않는 - 그네의 본질적인 모습을 찾아간다는 그런 내용일 것이다. 나 역시도 부모님의 감시와 통제 아래서 살아온 사람이다. 내 부모가 '사랑하니까...'라는 이유로 나에게 가하는 그 압제들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내 부모가 나를 믿지 못한다는 약간은 슬픈 얘기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운다고 말하는 것과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도록 돕는다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가 교육주체로 교육자를 전제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아이들을 교육주체로 상정하고 아이가 가진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말의 어원도 사실 가르친다는 것보다는 끌어낸다는 의미라고 한다. 아이들은 믿는만큼 자란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에 대한 경계의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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