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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론 ㅣ 박영신서 3
플라톤 지음, 이병길 옮김 / 박영사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들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장 오래된 유토피아 사상이라고 말한다. 유토피아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유토피아라는 개념이 있고 그것을 꿈꾼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과의 연장선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유토피아는 어떤 기준이 될 수 있고 그것을 꿈꾸는 것으로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나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현실과 유리되어 뜬 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플라톤의 이론이 현실에 충분히 적용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학교를 졸업하면 실업은 따놓은 당상일텐데도 영어공부나 자격증을 따는 데 소홀하고 철학책이나 읽고 있는 내게 사람들은 미쳤단다. 현.실.적.이지 못하단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게 아니란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에 의하면 영혼이란 타락한 현실을 자신의 고향으로 되찾는 험난한 인식의 길을 걷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실 취직시험공부를 등한시하면서 가끔 겁이 나는 것은 단순히 내가 취직준비를 게을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내가 공부를 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관료제나 기업조직에서 원하는 것과 어긋나기 때문에 그러한 조직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하나를 해도 CCTV라는 감시기제는 나를 길들이고, 취업을 한 사람들은 회사의 유연함과 자본의 철저함에 울상을 한다. 자신의 실적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영업을 뛰는 선배는 저녁이 되면 전국에 있는 지사 가운데에서 자신의 실적이 어느 정도가 되는지 핸드폰으로 주욱 전송이 되어 온다는데, 더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본이 짜놓은 판에서 나올 수는 없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경제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거꾸로 경제활동을 하고 자본 축적을 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서 목적없는 인생을 사는 것을 우리는 소외라고 한다.
나.답.게.산.다.는 것은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얽매여 취직시험공부에 열을 올리고 모든 일들을 덮어버리고 사회에 편입되기에는 껄끄러운 것들이 너무 많다. 플라톤이 생성, 소멸하지 않는 이데아를 설정하고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이야기했던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열등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믿듯이 현실이라고 지칭되는 것의 밖에서 막연한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이 플라톤 철학의 최종적 목표도 아니다. 그리고 그는 사물에게 허위가능한 의견을, 형상에 허위불가능한 인식을 대응시키지도 않았다. 그의 인식론의 근본과제는 오히려 세계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는 길을 비판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쇠퇴해가는 아테네에 있어서 선구적 역할을 해야 할 사람으로 규정하고 사상을 전개했듯이 플라톤의 사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이 현재 거세게 제기되고 있는 것은 형이상학의 폐기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이 현실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것은 철학적으로 매우 옳지 못한 태도이다.
철학을 나의 구미에 맞게 해석하는 것은 물론 잘못된 것이다. 내가 자신을 멋대로 해석하는 것을 물론 플라톤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플라톤에게서 착취하고 싶은 것은 내가 꿈꾸는 것이 헛된 망상이 아니라 현실을 가장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하나의 시도라는 믿음이다. 나는 그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굳어있던 것들이 하나씩 녹아내려 내 나름대로의 흐름이 되어간다고 믿는다. 다시는 원래처럼 굳을 수는 없을 것이다. 플라톤의 현실인식과 이데아는 현실을 바꾸어야 할 일종의 당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