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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현재 대두되고 있는 인간복제 및 생명공학의 문제와 연결시켜서 생각해보아도 좋을까? 생명공학을 둘러싼 문제는 항상 어렵다. 과학기술을 이용해서 생명복제를 꼭 해야 돼? 아니, 환경을 걱정한다고 해서 과학을 전적으로 포기해야 하는거야? 인간은 과연 같은 인간을 복제할 수 있나? 윤리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인간복제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불임부부에게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는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몇 십년 차이가 나는 일란성 쌍둥이에 불과하다는데? 개체복체와 배아복제는 또 어떤 차이가 있는걸까? 각종 기사와 문헌들에서 자세하고도 시끄럽게 떠들어대기는 하더군. 근데 이게 다 무슨 얘기인거지?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복제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렇지 않은 척 하지만 나는 인간복제의 반대자들이 제시하는 인간복제의 역기능을 모두 인정한다. 그리고 과학기술로 인해서 야기되는 위험성(유전적으로 돌연변이가 일어날 수 있다거나, 수명에 문제가 있다는 등)이 모두 제거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생명복제를 반대할 것이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어떻게 생각하면 참 근거없는 생태계의 조화와 자연의 질서라는 윤리를 믿는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개입했을 때 생기는 부정적 효과를 우려하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동물들 간의 관계에서 약자일 수 있는 초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이 육식동물을 죽인다면 그걸로 생태계 전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의학의 발달로 인해 사람이 150년을 살 수도 있다는데, 어휴 끔찍해라. 150년이나 살아서 뭐에 쓸려고, 그 사람이 살면서 일어날 자원의 부족과 환경오염의 문제는 생각안하나부지? 아, 의학이 그렇게 발달했는데 다른 과학기술은 발전안하겠냐구? 결국은 과학기술이 모든 걸 해결해줄거라구? 꿈꾸고 있네.... 난 이렇다.
어쩌면 나는 생태학자들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 왔던 걸까? 예전에 읽었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표현된 세계는 그 자체로 공포였다. 어쩌면 헉슬리도 생명공학에 반대하는 이데올로기를 가졌을 뿐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유전공학은 인류의 식량산업에 선구적인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그 유혹을 떨쳐버리기에는 그것이 너무 매혹적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가난한 사람들이 식량이 부족해서 못먹었던 것일까? 한 국가에서는 상층 계급이 사회의 대부분의 재화를 독차지하고 있고, 세계 차원에서 볼 때 몇 안되는 선진 국가들이 지구 자원의 7-80%를 차지하고 있는데? 제 3세계 국민들이 식량이 부족해서 굶고 있다고? 웃기고 있네!
인간복제를 놓고 보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한 인간을 복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2억원이라고 한다. 기술의 문제 이전에 부의 문제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과학기술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고 자본에 편입되어 가는데 이런 상황에서 생명공학의 딜레마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불평등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과학은 충분히 이데올로기적이며, 그 과정에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재고되어야 한다. 생명공학의 논의 속에도 그것은 분명히 드러나서 인간복제에 대한 의견대립을 떠나서 그 의견이 누구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인가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소설 속에서도 경계하는 것은 단순히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비인간적인 세상 뿐만이 아니라, 알파족, 베타족, 오메가족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새로운 계급사회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과학기술의 발전을 둘러싼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과연 누가 과학기술의 수혜자가 되느냐일 것이다. 그 수혜자가 생명공학기술과 그 기술의 상품화로 돈을 버는 자본이나 자본과 결탁한 국가가 아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과연 이 논쟁에서 누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