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솔시선(솔의 시인) 31
육근상 지음 / 솔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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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1

// 여우 | 육근상, 솔출판사


1.
한 줄 한 줄 읽어 내릴수록 가슴이 콩콩 거렸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살아서 움직였다. 소리를 내며 영상으로 튀어 올라왔다. 그의 시는 입체적이다. 진득한 사투리와 예스러운 정경만으로 갈음할 수 없음이다.

모르는 사투리를 찾아 적으며 최명희의 혼불을 생각했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흐르고 넘치는 혼불. 사전을 뒤지던 그때가 까마득했다. 백석의 시도 호출됐다. 그러나 백석의 시는 백석의 것이고 육근상의 시는 육근상의 것이었다.

메모는 포스트잇에 적어 붙이나 이 시집에는 직접 썼다. 중고로 팔지도 누구에게 주지도 않겠다는 뜻이다. 새 시집을 선물하겠다.


2.
나는 그의 시가 읽히는 것이 아니라 보인다.

• 손님 (14쪽, 전문)

냇물이 녹아 자갈밭 쇠스랑 긁는 소리다//작년 가을 내려놓은 밤송이들이 더벅머리로 또랑까지 왔다//겨우내 산꿩이 바위에 꽃 그림 그려넣고 꺼겅꺼겅 내려왔다//마당 켠 걸어놓은 양은솥에서 간장 달이는 냄새 가득했다//어린애 업은 민들레가 팔 걷어붙이고 장꽝 앉아 된장 치댔다//담장 넘겨보던 홍매가 멈칫멈칫 다녀갔다//동백이 까마중이 괭이밥이 다녀간 날 붓 통 맨 목련이 찾아왔다//며칠 비 그림만 그리다 돌아갔다//이른 아침부터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대찬 날이다

_
3.
시인은 엄니를 기억하고 그리는 마음을 여러 시에 담았다. 그 마음이 내게도 들어왔다. 내 엄마의 생은 신산했으나 자식에게만큼은 범람하지 않는 푸른 강이었다.

• 엄니 (67쪽, 전문)

영뵉이 아버지 일흔 넘기고 애미고개 넘어가자 먹감나무 아래 키질이던 엄니 알고 계셨다는 듯 절집 올라가 참나무 장작 쌓아 불 놓으셨다

천복 씨 엄니 며느리랑 싸우고 옥천까지 걸어가 느티나무에서 영영 내려오지 않자 이랑이랑 배추 모종에 거름 내던 엄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머릿수건 벗어 허리춤 탑세기 탁탁 털어내셨다

집 너머 골 오두막 살던 당고모가 백중날 아침 바람벽 그려 넣은 국화꽃으로 떠나자 점심으로 먹으려 애호박 부침개 하던 엄니 도도도도마질 서두르셨다

댓잎이 싸락눈 받아내는 저녁 무렵이었을까 구렁 내려온 바람이 사나운 짐승 소리로 울다 문풍지로 고요를 달랠 무렵이었을까 큰할머니 뵙고 오신 엄니가 머리 풀자 온 집안이 그렁그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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