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 지적 망국론 + 현대 교양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정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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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느낀 생각은 작가가 자신의 교육 이상향의 설정과 추구에 있어 너무나 안일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는 문부성의 개입이 없었던 시절에 대학을 다닌 자신을 기준으로, 자신의 후배는 물론 현 시대의 대학생들이 기본 수준의 ‘교양’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한편으로 그가 그저 지식인으로써 한 발짝 물러나서, ‘제네럴리스트’가 되지 못하는 현대의 대학생들을 안타까워하며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나는 ‘바보’였고, 앞으로도 ‘바보’로 남을지 모르는 비겁함에 억지로 ‘바보들’을 대변한 것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지적 망국론」, 「현대 교양론」은 이미 1997~1998년에 주장하였던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 책과 현재와의 시간적 차이는 15년을 넘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가 주장하는 당시 일본의 중,고등학교 교육 시스템 및 대입을 위한 교육에 대한 비판은 현재 우리나라의 대입 시스템에 가해지는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에서 들어나는 일본의 교육 시스템- 문부성이 지배하는 밀어붙이기식 교육제도, 중,고등학교 교과 이수 과목과 대입 시험의 배정 과목, 암기 중심의 교육, 사립대학의 시스템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관립 대학 -는 쉽게 현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입 시킬 수 있다.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대입을 준비하면서 나는 주위에서, 미디어에서 시스템을 향한 여러 비판을 들었다. 대학생이 된 지금은 난 대입제도에서 한 발 물러나 있으며, 대학 교육에 이미 속해 있다. 나는 내가 흘려보낸 고등학교의 시절을 상기했다. 그에 따른 결론은 내가 작가가 주장하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고,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은 스스로 ‘바보’임을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하였다. 작가가 논하는 기초 교양의 필요성에 대해 잘 이해하지도 못하였고, 이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대학을 거쳐서도 ‘바보’로 남지 않도록 스스로의 뱃심을 정하여야겠다는 단순한 것뿐이다. 대학에 들어온 지 2달이 조금 넘은 지금, 이 책은 처음의 이미지와는 달리 지금 나의 생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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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전집 4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7년 4월
평점 :
절판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전쟁이나 사후 세계, 초월자의 힘에 기대지 않은 채 오직 개인에 초점을 맞춰 이 세계의 부조리함에 맞서는 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매우 논리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과 삶 사이의 부조리함을 정의하는 것과, 습관이라는 것을 단지 ‘부조리함’에 맞서기 위해 반복한다는 그의 결론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글의 초반에서 카뮈는 삶을 포기하는 자살에 대한 논리적 전개를 펼치는데, 그는 자살이 살아간다는 것에 있어 습관이라는 ‘가소로운 면’을 인정했을 때 이뤄진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그 반대되는 습성,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그 감정은 무엇일까? 카뮈는 쉽게 형용할 수 없는 그 감정이 바로 부조리함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카뮈는 이러한 ‘부조리’함에 대해 논리적 추론을 이어가는데, 우선 부조리함의 근본은 인간 개인과 삶, 카뮈의 표현으로는 배우와 무대 사이의 절연(絶緣)이다. 즉, 이 세계라는 곳에 떨어진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기원도, 이 세계 이후의 삶도 알 수 없으며, 어떠한 지표도 발견하지 못한 채 이 낯선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지만, 마음 한편에 드는 ‘불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인간과 세계를 황량한 사막과 그 곳에 떨어진 이방인으로 보는 이 관점. 이 관점에서 카뮈의 부조리함에 의거한 추론이 진행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이러한 부조리함을 발견하고, 사고를 거듭한 끝에 어떠한 실천을 옮기게 되는데, 자살로서 이 삶에서 벗어나거나, 삶을 이어가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때, ‘부조리함을 인식하였지만 거듭되는 일상의 삶을 반복하는 것’을 카뮈는 부조리한 삶에 대한 저항, 다른 말로는 ‘희망’ 으로 본다. 우리는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초월적인 힘과 전제를 제외한 오직 한 인간이 쓴 이 논리적 결과물은, ‘논리’라는 사슬로 우리가 시지프처럼 살아가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시지프의 반복되는 행위에서 그것 또한 저항, 또는 개인의 행복이라는 의의를 발견하고 있지만, 시지프에게 주어진 것은 그저 형벌일 뿐이다. 일상의 반복이 곧 삶이고, 우리가 삶을 이어가는 것이 단지 이 세계, 또는 그 어떠한 것이든 그것에서 느껴지는 ‘부조리함’에 맞서는 것이라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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