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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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마을에서 벌어진 어린아이 시시의 죽음은 수십 년 뒤까지 삶을 휘저으며, 치유되지 않은 비극으로 남는다. 그 슬픔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마침내 엄마 스타의 죽음과 함께 무너져내린다. 더치스는 남겨진 동생을 지키기 위해 과거의 진실과 마주하며 스스로를 구원하려 한다. 주인공 더치스는 세상과 맞서 싸우는 어린아이이다.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 스타와 어린 동생 로빈을 위해, 아직 어리지만 더치스는 모든 시간을 투쟁에 바치며 자신을 무법자라고 부른다. 그녀의 무법자적인 삶이 마치 정의로운 투사처럼 여겨지기엔 너무 어린아이일뿐인 소녀. 그 소녀은 왜 이렇게 삶에 찌들어버린 인물이되어야했는지에 대해 집중해야한다. 어릴적 사고로 죽은 이모 시시로 인해 망가진 집안의 삶과 시시로 인해 무너진 워크, 빈센트, 스타, 마사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사건은 단순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복잡해진다. 뜻밖의 사건에 의해 죽어버린 엄마 로 인해 더치스와 로빈은 보호받지 못한삶의 한가운데에 놓인다. 로빈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모든 질서와 거짓에 맞서는 더치스에게 법도, 어른도, 집도, 진실도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로빈이 살아남는 것이다. 무법자라는 타이틀은 사실 보호자의 또 다른 이름이며, 어린아이가 짊어진 책임감의 껍데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더치스의 모든 애씀은 사건을 꼬이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엄마마저 지켜야 할 존재가 되어버린 어린 소녀의 착각 섞인 사랑은 진실을 묻은 채 모두의 삶을 무너뜨렸고, 더치스의 무법자 인생 역시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강한 척하는 어린 소녀의 삶은 매우 안타깝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세상에 의지하지 못하고, 어른 이상의 것을 판단해야 하는 현실 자체가 비극이다. 그녀의 거칠고 무지한 행동 대부분은 법과 도덕의 기준이 그녀를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필요한 모든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힘든 여정끝에 남은것은 더치스와 로빈의 진실에 대한 마주침이다. 이로 인해 더치스와 로빈이 그토록 꿈꾸던 삶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로빈이 삶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과 더치스는 다르다. 어쩌면 어떤식으로든 보호라는 것을 받아본 아이와 보호받는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는 같을 수가 없었던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소녀는 자신이 알지 못하게 받아온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치스는 모든 걸 망친 것 같지만,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진실. 그건 이 소설의 가장 복합적인 감정이자, 가장 아름다운 아이러니이다. 보호받았지만 보호받지 못한, 모든 것을 체념했을 때 비로소 알게 된 자신을 향한 모두의 손길이 그토록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소설 마지막, 유일했던 서로는 각자의 삶으로 향한다. 그토록 원하던 안정으로 들어가는 로빈도, 체념을 버리고 스스로 새로운 길을 택하는 더치스도. 성장할 수 있을것 같은 아이와, 이제서야 어린아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너무 일찍커버린 아이, 둘의 모습이었다. "소녀는 자기가 잃은 모든 것을 생각하며, 동생이 얻은 모든 것을 생각하며 울었다." 더치스는 유일한 가족을 잃었고, 로빈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가족을 얻었다. 그 눈물은 상실의 눈물이자, 해방의 눈물이며, 사랑의 마지막 인사다. 처음에 나왔던 비어 있던 가계도는 마지막에 완성된다. 상처뿐인 관계이지만 그녀가 받은 마지막 시선과 말들은 진심이었기에 더치스는 체념이 아닌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끝이 곧 시작이라는 말처럼, 그녀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녀는 무법자가 아니었다.그녀는 단지,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사랑하려 했던 지극히도 어린 아이였다.

소녀는 자기가 잃은 모든 것을 생각하며, 그리고 동생이 얻은 모든 것을 생각하며 울었다 - P565

헤아릴수없는 거미줄처럼 얽힌 상처가 숱한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워 새로운 것을 낡은 것으로, 생생한 것을 부패한 것으로 바꿔버렸다. - P43

"그냥 중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사는 데는 거기니까요. 꼭 이쪽 아니면 저쪽일 필요는 없잖아요." - P73

"감옥은 빛을 꺼버리는 곳이야. 그리고 이 집은 어쩌면 작은 불길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 타고 있지. 그걸 놔버리면 그 마지막 빛마저 보내버리면, 어둠만 남을 거고 난 더이상 볼 수 없게 될 거야." - P105

더치스는 어머니가 대부분 미웠고, 이따금 좋았고, 너무도 필요했다 - P136

"서장은 무얼위해 기도하시오?"
"적절하고 타당한 끝."
"희망은 세속적인 거요. 삶은 쉽게 깨지는거고. 그리고 우리는 이따금 너무 꽉 매달리지, 부서질 거라는걸 알면서도." - P220

"그날 밤 이후로, 그 일을 저지른 뒤로 녀석은 우리 중 누구도 자유를 되찾을 수 없다는 걸 알았던거야." - P352

그의 침묵은 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강렬하게 타오르는 무시무시한 자기혐오를 드러내는 것이다. 자기가 죽인 아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이세상에서 자기만 살아가느니, 다른 사람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르는 편이 나았기에 - P472

"사람들은 평생 하늘을 올라다보며 질문을 던져. 신은 개입을 하는 걸까, 아니라면 왜 사람들은 여전히 기도하는거지?
"믿음이지, 신이 개입할 거라는 희망."
"아니면 삶이라는 게 너무 하찮으니까." - P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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