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야기가 함께 있는 연작소설.
신경숙 작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성은 여전하다. 나는 그것을 애틋한 서글픔이라 부르고 싶다. 무엇을 읽어도, 어떠한 구절을 접해도 막연하게 느껴지는 그 씁쓸한 서글픔, 혹은 끝이 없는 공허한 외로움.
그래서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덤덤하게 읊조리는 것조차도 고요함이 올라와 자꾸만 목이 잠겨버린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지만, 그 모든말이 허공에서 외롭게 울리다가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대로 고개를 저어야하는 그런 감정.
작가는 글에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다. 대화에서도, 독백에서도 감정을 가라앉히고 덤덤히 말할뿐이다. 하지만 불투명하게 쓰여있는 말 속에서 그 감정이 읽히며 나에게 갇혀있는 나만의 감정은 후벼지고 들쑤셔진다. 허무하리만큼 무감각했던 나의 빈 공간에 날 것의 감정이 휘몰아친다.
이러한 까닭에 신경숙 작가의 책을 읽을라치면 매번 맘을 가다듬는 일부터 시작하지만 결국 무너지고야 만다. 그리고 이런 슬픔은, 슬픔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크게 위로받는다. 매번 신경숙작가의 글을 찾는 이유가 나의 슬픔을 이해받고 찾아가며 깊은 물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올수 있는 힘을 되찾게 될수 있어서가 아닐까.
세 작품은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이다. 아니 누군가에게 쓰는것 처럼 보이는 나에게 쓰는 편지이다. 그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싶은 자신의 이야기, 나에게 하고 싶은 나의 감정에 충실한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감상과 같은 이야기. 그래서 읽는이에게 그 이야기에 고요히 귀기울이게 하고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에 있는 생각들을 끄집어 내게한다. 그 무엇도 강요되지 않는 감정이지만 도리어 감정의 끝자락까지 훑게 만드는 힘이 있는 글이다.
[첫번째 이야기. 봉인된 시간]
-지난 삼십여년 여기 사는 동안 내 마음은 늘 샌디가 휠쓸고 간 이 폐허 같았던 것일까. 나를 잊었느냐고 물어서 미안하네. 고국에서 누군가 오면 반갑고 좋아서 내가 먼저 정을 붙여 지내다가 이렇게 내 마음만 남는 과정을 한 두번 겪었겠나. 그런데도 왜 매번 나는 이렇게 처음 겪는 일처럼 휘둘릴까. p17
-전화도 안 되고 이메일을 보낼 수도 없게 된 이 상황이 오히려 편안하군. 왜 전화를 받지 않나, 왜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나, 복잡하게 생각 안 해도 되니까. 나는 이 글을 선생에게 부치려고 쓰는 것도 아니야. 도무지 무엇인가 하지 않고서는 이 시간을 견더내기 어려워 쓰고 있어. p21
-상관없어. 나는 이 편지를 선생에게 부치려고 쓰고 있는 것만은 아니니까. 저 바람 앞에서 무엇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이리 엎드려 있는 거니까. p31
-남편은 여기서도 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어. 병원 가는 것도 싫어했네. 그이가 늘 가고 싶었던 곳은 고국이었다고 나는 생각하네. 그곳에 가지 않는 한 남편에게 여행이란 부질없는 것이었겠지. 나는 남편의 나태한 모습을 본 적이 없네. 야위고 꼿꼿하고 부지런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늘 내 곁에 있었다네. p63.
현실에 순응하는 삶. 하지만 진정 마음으로는 체념하고 놓아버린 삶의 사람들이 보인다. 처음 ‘깊은슬픔’을 읽었을 때 이후로 ‘아버지에게 갔었어’에 이르를 때까지 계속. 차라리 현실에 소리치고 어떤식으로든 부정하는 삶이라면 처연하지않을텐데 마음으로는 놓아버린 채 현실에서는 괜찮은 듯한 그 모습이 지쳐버린 침묵으로 보이는 것이 더 그러하다. 혼잣말이 더 공허하고 혼잣말이 더 힘든 이유이기도. 내 혼잣말이 내 귀로 들어오고, 그리고 그 감정을 다시 나를 일깨워지는 순간 부정 할 수 없게 되는 감정의 현실.
그렇게 서글픔이 슬픔이 되고 슬픔의 감정은 눈물을 흐르게 한다. 그리고 그 눈물이 메마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체념 이후의 시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매번 그런 감정을 준비하고 읽게 되는 신경숙작가의 글.
-내 귓속으로 거침없이 파고드는 한국말 내 말, 내 모국어, 내가 돌아왔다는 것이 그제야 실감나더군. 내가 그리워한 것이 사람이 아니라 말이었나? p64
-어느날부터 변해버리고 없는 나의 서울을 찾아다니는 걸 그만두었네. p66
-인간은 모국어를 통해서만 자신의 진실을 말할 수 있다고 했지. p66
‘나의’라는 단어가 이렇게 애처로울수 있을까. 내안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나만의 기억. 사람이 살아가는 힘이자 공유되지 않아도 나만은 알 수 있는 나의 지난 시간.
오늘의 글은 너무 감성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신경숙 작가가 가진 가장 큰 영향력이라고 생각하기에 두서없어도 공유하기에 적합하지 않아도 그렇게 써내려가는 글이다.
[두 번째 이야기.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
-결핍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은 이유 없이 잡을 손이 필요했다. p112
-그야말로 폭풍이 좀 있었고 그 폭풍은 어제의 일이지 오늘 것도 내일 일도 아니리라고, 지나간 것, 더구나 나쁜일들은 더 이상 상기하지 말자고. P92
-내가 내 말의 구체적인 현상에 살지 않는다면 나에겐 계속 회상이나 추억 같은 것을 갉아먹고 살아가는 시간만 남은걸까? p99
-거절당할까봐 떨고 있던 나는 너의 말에 정신이 번쩍들었다. p107
-너에게 무슨 얘기인가를 계속하고 싶어하는 이 욕망조차 분명 결국 사라지게 될지라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될 때까지 계절이 순환하듯이 시간이 원으로 말리듯이 우리가 함께하지 못한 시간들 속에 접혀져 있는 이야기들을 너에게 하고 싶다. p122
-나중에 네가 나 기억할 때 여기까지만이면 좋겠어. 너 아니고 누구라도. 통증이 시작되면 내가 어떤 모습인지 나도 몰라, 그냥 덩어리가 된 거 같아. 나도 모르는 고통스러워하는 나 말고 너무 작아져서 없는 것 같은 나 말고...... 그래 여기까지만. p149
-이 고통스러운 두려움과 대면할게. 사랑하고도 너를 더 알지 못해서 미안해. 신은 늘 굶주려 있는 것 같아, 잡아먹힌다 해도 앞으로 나아갈게, 내일 다시 연락할게. p157
[세 번째 이야기. 작별곁에서 ]
-인간이든 공간이든 사물이든 오래 방치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지금의 저처럼요. 흘러가지 못하고 물이 고이면 자연스럽게 냄새를 풍기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p164
-잊을 수 있으면 잊고 지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닙니다. 잊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시간과 함께 모든 게 희미하게 옅어지는 건 가을 뒤에 겨울이 오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맺힌게 없이 자연스럽게 잊히는 삶을 누구나 살게 되는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p167
-그 간단한 일조차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요, 가끔 이런 상태를 맞닥뜨리곤 합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몸이 바닥으로 하염없이 가라앉는 상태. p179
-지금 제가 그러고 있습니다. 일,어,나,야,한,다,일,어,나,야,한,다......고요. 말이란 묘한 힘이 있어서 계속 그 말을 주문처럼 되뇌면 그 말 비슷하게 된다고 했던 사람이 선생님이셨던가요. p190
-선생님은 그저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디선가 들으니 이렇게 무게없이 바람결처럼 몸을 쓰다듬어주면 새 기운이 고인대.라고 지나가는 얘기처럼 말씀하셨지만 제게는 그게 사실인 듯 느껴졌어요. p216
-그렇게 시간은 그리고.....를 계속 이어가는 것인가요? 그리고......그리고......그리고...... p234
-내 숨은 내 것인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 살지 못한 사람들 몫까지 내가 함께 살고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요. p257
듣지 못하는 상대들은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세 사람의 세가지 이야기는 결국 서로에게 연결되지 않아도 하나로 이어지며 과하게 넘쳐나던 감정을 포근히 감싼다. 그래서 그 끝은 나에게는 큰 위로이고, 작별의 끝은 마음의 따뜻한 온기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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